가려뽑은 기별 3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적절한 개념의 필요
초청에 의하여 나는 목사들의 장막*에서 목사들에게 몇 마디 의견을 말하였다. 우리는 가정 신앙에 관하여 여기 바로 이 지상에서 백성들을 교육하도록 마련되어야 할 가장 좋은 계획에 대하여 얼마간 이야기하였다. 3SM 183.1
많은 사람들은 무엇이 믿음을 구성하는지에 대하여 알지 못하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흑암과 낙망에 대하여 불평한다. 나는 질문했다. “그대들의 얼굴이 예수께로 향해 있는가? 그대들은 의의 태양이신 그분을 바라보고 있는가? 그대들은 교회에 믿음의 문제와 그리스도의 의를 온전히 의존하는 문제를 명백하게 정의해 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대들의 말과 기도에는 그리스도, 그의 비할 데 없는 사랑, 우리를 위하여 이루신 그분의 위대한 희생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으므로 사단이 우리가 마땅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가져야 하며 가지지 않으면 안되는 견해를 거의 어둡게 하였다. 우리는 영적인 도움을 위하여 인간을 덜 신뢰해야만 하며 훨씬 더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 가까워지는 것을 신뢰해야 한다. 우리는 단호한 목적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하늘 속성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할 수 있으며, 그분의 사랑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그분의 긍휼을 말하고 노래하며, 그분을 우리의 개인적인 구주로 만들 수 있다. 그렇게 할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신 것을 사랑하며, 그리스도께서 미워하신 죄를 미워한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에 대하여 말하며 곰곰이 생각해야만 한다.” 3SM 183.2
나는 목사들에게 말하였다. 그리스도의 능력에 대해 강조하면서 백성들을 한 발 한 발 그들이 산 믿음을 통하여 예수를 있는 그대로-그분을 그분의 충만함 속에 있는 대로, 죄를 용서하시는 구주로, 우리의 모든 범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분으로 볼 수 있을 때까지 인도하라. 우리가 그분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되는 것은 바라봄을 통해서이다. 이것이 현대 진리이다. 우리는 율법을 말해 왔다. 그것은 옳다. 그러나 우리는 단지 어쩌다가 그리스도를 죄를 용서하시는 구주로 받들어 올렸을 뿐이다. 3SM 183.3
우리는 늘 우리 마음에 죄를 용서하시는 구주를 간직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을, 하나님의 율법을 크게 하며 영화롭게 하시기 위하여 돌아가시려고 오셨으나 한편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구주의 보혈의 공로에 온전히 의존하는 죄인들을 의롭다 하시기 위해 오신 분으로 올바른 위치에서 제시하여야 한다. 이 점이 명백하게 되어 있지 않다. 3SM 183.4
영혼을 구원하는 기별, 셋째 천사의 기별이 세상에 주어져야 할 기별이다. 하나님의 율법과 예수의 믿음이 둘 다 대단히 중요하며 동등한 힘과 능력으로 주어져야만 한다. 대개 그 기별의 첫 부분에 생각을 집중하여 왔으며 마지막 부분은 이따금 생각하여 왔다. 예수의 믿음이 이해되지 못하였다. 우리는 그것을 말하고, 그것으로 살고, 그것을 기도해야만 하며 기별의 이 부분을 그들의 가정 생활에 적용하도록 백성을 교훈 해야 한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 2:5). 3SM 184.1
그리스도로 채워진 설교가 필요함 — 전 설교에 예수의 이름이 거의 불리워지지 않는 건조하고 그리스도가 없는 설교가 행해져 왔다. 설교자의 마음이 예수의 사랑에 굴복되고 녹아지지 않았다. 그는 건조한 이론에 집중한다. 큰 감동이 일지 않는다. 설교자가 거룩한 열정을 가지고 있지 못하니 어떻게 백성들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겠는가? 회개하고 돌이킬 필요가 있다. 그렇다! 설교자들이 돌이켜야 한다. 백성들은 그리스도를 그들 앞에 높이고 “바라보고 살” 도록 간청함을 받아야만 한다. 3SM 184.2
왜 우리의 입술은 그리스도의 의의 주제와 세상을 위한 그분의 사랑에 대하여 그렇게 침묵하는가? 왜 우리는 백성들을 새로운 삶으로 되살리고 일깨우는 그 어떤 것을 그들에게 주지 않는가?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외칠 때 기쁨과 숭경으로 가득 찼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 (딤전 3:16). 3SM 184.3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 2:5-11). 3SM 185.1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사함을 얻었도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골 1:14-17). 3SM 185.2
이것이 사람들의 마음에 그리스도가 형성되지 않았으므로 설교에서 크게 제외된 채 버려진 웅대한 하늘의 주제이다. 그리고 사단은 그의 방법을 사용하여 그리스도께서 숙고와 숭경의 주제가 되지 못하게 하여 왔다. 매우 강력하고 매우 필수적인 이 이름이 모든 이들의 입술에 있어야 한다. 3SM 185.3
“내가 교회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골 1:25-29). 3SM 185.4
여기 그리스도의 목사들이 할 일이 있다. 이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즉 그리스도와 그의 품성이, 그분의 말과 사업이 백성들 앞에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의 신앙적 상태는 그들을 가르치는 자들을 거스려 증거한다. 그리스도가 거의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는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지경에 처해 있다. 그들은 영적 생애와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3SM 185.5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에 대한 두려움 — 백성의 교사들은 산 경험을 통하여 그들의 신뢰의 근원, 힘의 근원과 친숙하게 되지 못하였다. 그리고 주님께서 사람들을 일으켜서 백성들에게 전할, 바로 이 시대를 위한 기별-새로운 진리가 아니라 바울이 가르치고 그리스도께서 친히 가르치신 그 기별-과 함께 보내실 때에 그것은 그들에게 낯선 교리가 된다. 그들은 백성들-그들 앞에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을 통하여 힘을 얻는 경험을 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다 죽게 된 백성들-에게 주의를 주기 시작한다. “너무 서두르지 말라. 기다리면서 그대가 그것에 대하여 좀 더 알게 될 때까지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 그리고 목사는 백성이 신선한 만나를 필요로 하고 있을 때에 그 동일하고 건조한 이론을 설교한다. 3SM 186.1
그리스도의 품성은 무한히 완전한 품성이며 그분은 높임을 받으셔야만 하고 시야에 두드러지게 드러나야 한다. 이는 그분은 그분을 믿는 모든 자들의 힘, 능, 성화와 의이기 때문이다. 바리새인적 정신을 가진 자들은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보낸 기별에 참여하지 않아도 옛날의 좋은 이론만을 붙들면 좋고 안전한 자리에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옛날의 바리새인들도 그렇게 생각했으며 그들의 실례는 자기 만족의 자리를 떠나도록 목사들을 경고해야만 한다. 3SM 186.2
복음의 영감적인 주제를 제시함 — 우리에게는 지금 우리에게 이르러 와서 근면과 진지한 믿음을 가지도록 우리를 분기시키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런 후에 우리는 성령의 침례를 받고 영광의 소망인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형성할 것이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우리 믿음과 사랑의 거룩한 대상으로 드러내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할 것이며 그리스도께, 그리고 그리스도에 관하여 기도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분의 거룩한 이름을 찬양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백성 앞에 그분의 기적, 그분의 자아 부정, 그분의 자아 희생, 그분의 고난, 그분의 십자가에서의 돌아가심, 그분의 부활과 승리의 승천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모든 마음에 사랑과 강렬한 열정을 일깨우는 복음의 영감적인 주제들이다. 여기에 지혜와 지식의 보물, 마르지 않는 샘물이 있다. 그대가 더욱더 이 경험을 추구할수록 그대의 삶의 가치는 더욱더 커질 것이다. 3SM 186.3
생수를 샘물에서 퍼내지만 공급의 감소는 일어나지 않는다. 복음의 목사들이 주님을 항상 그들 앞에 모시고 그분의 숭경할 만한 품성을 연구하는 데 시간을 바친다면 그들은 능력 있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만약 그들이 이 일을 행한다면, 배교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요 그들의 방자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불명예스럽게 하고 예수를 공개적으로 치욕스럽게 함으로 총회로부터 분리되는 자가 하나도 없게 될 것이다. 모든 복음의 목사들의 능력은 믿는 교회들로 하여금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그들의 개인적인 구주로 받아들이고 그분을 바로 그들의 삶에 이끌어 들여서 예수를 배우고 예수를 믿으며 예수를 높이기 위하여 그분을 모본으로 삼도록 교육하는 일에 쓰여져야 한다. 목사는 그 자신이 친히 그리스도의 품성을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그는 진리를 숙고하며 구속의 비밀, 특별히 이 때를 위한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을 명상하여야 한다. 3SM 187.1
성육신과 대속에 대하여 좀 더 집중함 — 그리스도께서 우리 모두에게 있어서 만유이시며 만유 안에 계시다면, 왜 그분의 성육신과 대속의 희생이 교회 안에서 좀 더 집중적으로 이야기되지 않는가? 왜 마음과 혀가 구원자를 찬양하는 데 사용되지 않는가? 영원한 세대를 통하여 구원받은 자들의 힘이 이 일에 쓰여질 것이다. 3SM 187.2
예수를 백성들에게 가르치기 위하여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과 산 관계를 가질 필요가 있다. 그런 후에 우리는 경험과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무엇인지에 대한 살아 있는 개인적인 경험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였으며 우리 속에 머무는 능력을 거룩한 성실함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 백성들은 그리스도께 이끌려야만 한다. 그분의 구원하는 효험에 탁월성이 주어져야만 한다. 3SM 187.3
참된 제자는 그리스도의 발 앞에 앉아 우리 구주께서 발하시는 진리의 귀한 보석을 발견하며 그것들의 귀중함을 분별하고 그 가치를 인식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겸손하고 가르침을 잘 받는 자가 됨에 따라 점점 더 그들의 이해력은 그분의 율법으로부터 놀라운 것들을 발견하도록 열리게 될 것인데 이는 그리스도께서 그것들을 명명백백하게 제시하셨기 때문이다. 3SM 187.4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와 구원의 교리는 교회 녹명책에 그 이름이 올라 있는 다수에게 불가사의이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계셔서 그분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신다면 그들의 이해의 더딤을 책망하실 것이다. 그분은 더디고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에게 “나는 그대의 수중에 그대가 그 가치를 알아채지 못하는, 그대의 구원에 관계되는 진리를 맡겨 두었다” 고 말씀하실 것이다. 3SM 188.1
오,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눅 24:45) 라는 말씀이 교회들과 백성들에게 전파하는 목사들에게 발하여질 수만 있다면! 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그대들에게 말한다. 이 시간까지 구원의 위대한 계획과 연관된 성경 진리는 희미하게 이해되었을 뿐이다. 그 진리는 계속적으로 열려지고 확장되고 발전할 것인데 이는 그것이 그것의 저자처럼 거룩하기 때문이다. 3SM 188.2
예수께서 백성들을 가르치신 방법 — 예수께서는 교리에 대한 전반적인 언급이나 계속적인 강론을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흔히 짧은 문장으로, 하늘 교리의 낟알을, 마치 식별력 있는 일꾼에 의해 모아져야 할 필요가 있는 진주처럼 파종하셨다. 그분이 가르치시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믿음과 은혜의 교리가 드러났다. 오, 어찌하여 목사들은 영적 건강과 활력을 줄 수 있는 바로 그 음식을 교회에 주지 않는가? 그 결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실제적으로 순종하는 부요한 경험이 될 것이다. 왜 목사들은 거의 죽게 된 그 남아 있는 것들을 강하게 하지 않는가? 3SM 188.3
제자들을 떠날 즈음에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주실 수 있는 가장 큰 위안을 추구하셨다. 그분은 그들에게 사람의 인간적 노력과 결합하도록 하기 위하여 보혜사 성령을 약속하셨다. 성령의 약속보다 교회에 적게 경험되었고 적게 성취된 약속이 어디 있는가? 그에 잇따라 모든 축복을 가져오는 이 축복이 제외되는 분명한 결과는 영적 기근이다. 이것이 설교자들에게 떨어지는 책망이다. 교회는 일어나야 하며 더 이상 미미한 이슬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3SM 188.4
성령에 대한 우리의 필요 — 오, 왜 우리 교회의 신자들은 그들의 특권에 못 미치는 곳에 멈추는가? 그들은 하나님의 영의 감화의 필요성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민감하지 못하다. 교회는 마리아처럼 “사람이 내 주를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요 20:13) 라고 말하고 있는지 모른다. 3SM 189.1
현대 진리를 설파하는 목사들은 죄의 자각과 영혼들의 개종에 있어서 하나님의 영의 감화가 필요하다는 데에 동의할 것이다. 이 감화가 말씀의 설파에 따라야만 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에 대한 깊고 실제적인 지식을 충분히 가질 만큼 그 중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들 자신의 마음에 진리의 거룩한 감화의 능력과 은혜가 부족함으로 그들은 영적인 사물을 분별하지 못하고 교회에 그것의 분명한 필요성을 제시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절면서 나아가고 영적 성장에 있어서 위축되는데 이는 그들이 그들의 봉사에 있어서 명목상의 신앙을 가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은 생생하고 효과적인 필요성, 지속적인 원리로서 느껴지지 않는다. 3SM 189.2
오, 모두가 이를 깨닫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기별을 받아들였으면! 그분은 사람들 눈에 감취어져서 형식의 쓰레기 밑에 파묻힌 진리를 제시하도록 그분의 종들을 일으키셨는데 이는 그것이 십자가를 높이는 일에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탈환되어서 현대 진리의 뼈대 속에 다시 놓여져야만 한다. 그것의 요구는 주장되어져야 하며 세천사의 기별 속에서 그것에게 주어진 위치 역시 주장되어져야만 한다. 3SM 189.3
많은 그리스도의 목사들로 하여금 금식을 선포하고 거룩한 성회를 열어 그분을 만날 만한 때에 하나님을 찾게 하라. 그대가 지금 갈바리의 십자가 밑에 엎드려 있을 때에 그분을 부르라. 스스로 모든 자만을 벗어 버리고 교회를 대표하는 파수꾼으로서 낭실과 단 사이에서 애통하면서 “주님, 당신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소서. 당신의 기업으로 욕되게 마옵소서. 당신의 뜻대로 취하시되 당신의 백성인 우리에게서 성령을 거두지 마소서” 라고 부르짖으라. 오, 기도하라. 하나님의 영을 부어 주시도록 기도하라! — 원고 27, 1889. 3SM 18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