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와 선지자
69장 다윗이 왕위에 오름
사울의 죽음은 다윗을 유랑자가 되게 했던 위험들을 제거해 버렸다. 이제 다윗이 고국으로 돌아갈 길이 열렸다. 사울과 요나단을 위하여 곡하는 기간이 끝났을 때에 “다윗이 여호와께 물어 가로되 내가 유다 한 성으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라 다윗이 가로되 어디로 가리이까 가라사대 헤브론으로 갈지니라.” PP 697.1
헤브론은 브엘세바에서 북쪽으로 20마일 떨어진, 장래의 예루살렘 터와의 중도에 있었다. 헤브론은 원래 아낙의 아비아르바의 성읍으로 기럇 아르바라 불리었으나 후에 마므레라 불리었고 이곳에 부조들의 장지 “막벨라 굴”이 있었다. 헤브론은 갈렙의 소유였었는데 이제는 유다의 제일 큰 성읍이었다. 헤브론은 비옥한 전원과 풍요로운 땅에 둘러싸여 있는 골짜기에 놓여 있었다. 팔레스틴의 가장 아름다운 포도원들이 감람원과 다른 과수들의 무수한 농원과 함께 헤브론 변두리에 있었다. PP 697.2
다윗과 그의 추종자들은 신속히 저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지시를 순종할 준비를 갖추었다. 6백명의 무장한 군사들은 처자들과 함께 양떼와 소떼를 거느리고 곧 헤브론을 향해 길을 떠났다. 이 무리들과 성읍에 들어갈 때에 유다 사람들은 다윗을 장차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환영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곧 다윗의 즉위식을 위한 준비를 하였다.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 족속의 왕을 삼았더라.” 그러나 다른 지파들을 지배할 그의 권위를 확립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려는 노력은 전혀 필요가 없었다. PP 697.3
새로 왕위에 오른 군주 다윗이 제일 먼저 할 일은 사울과 요나단의 명성에 대하여 그의 친절한 사려를 표하는 일이었다. 사울과 요나단의 시체를 구출하여 명예로운 장례를 지낸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의 용감한 행위에 대하여 들은 다윗은 야베스에 사자를 보내어 “너희가 너희 주 사울에게 이처럼 은혜를 베풀어 장사하였으니 여호와께 복을 받을지어다 너희가 이 일을 하였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은혜와 진리로 너희에게 베푸시기를 원하고 나도 이 선한 일을 너희에게 갚으리”라는 기별을 전하였다. 그리고 다윗은 자기가 유다의 왕위에 오른 것을 통고하고 참으로 마음이 진실함을 나타낸 자들에게 신하가 되어 줄 것을 요청하였다. PP 697.4
블레셋 사람은 다윗을 왕으로 삼은 유다 사람의 처사를 반대하지 않았다. 그들은 사울의 나라를 괴롭히고 약하게 하려고 방랑 중에 있는 다윗과 친하였으므로 이제 저희가 전에 다윗에게 친절히 한 까닭으로 그의 권세의 확대는 마침내 그들에게 이익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였다. 그러나 다윗의 치세는 어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왕위에 오름과 동시에 음모와 반역의 어두운 역사가 시작되었다. 다윗은 반역자로서 왕위에 앉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택하셨으므로 불신이나 반대를 받을 까닭이 없었다. 그러나 아브넬의 영향을 통하여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왕으로 추대되어 이스라엘에 다윗과 경쟁하는 다른 왕권이 세워짐으로 인해 다윗의 권위는 유다 사람들에게 거의 인정을 받을 수 없었다. PP 698.1
이스보셋은 연약하고 무능한 사울의 집의 대표자인 반면에 다윗은 나라의 책임을 질 수 있는 현저하게 뛰어난 자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운 주모자 아브넬은 사울의 군대의 총사령관이었고 이스라엘 중에 가장 뛰어난 사람이었다. 아브넬은 여호와께서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르도록 지명하신 것을 알고 있었으나 그처럼 오랫동안 다윗을 추격한 고로 이제 그는 이새의 아들이 사울의 다스리던 나라를 계승하는 것을 원치않았다. PP 698.2
아브넬이 처하여 있던 환경은 그의 진정한 성격을 드러낼 기회를 제공했는데 그는 야심이 있고 절조가 없는 인물임이 드러났다. 아브넬은 사울과 친밀히 교제하였고 왕의 정신에 감화를 받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스리도록 선택하신 자를 멸시하였다. 그가 진에서 잘 때에 다윗이 사울의 곁에서 물병과 왕의 창을 취한 그 때에 그에게 가한 신랄한 비난으로 아브넬의 증오심은 증가하였다. 아브넬은 왕과 이스라엘 백성이 듣는 데서 다윗이 “네가 용사가 아니냐 이스라엘 중에 너 같은 자가 누구냐 그러한데 네가 어찌하여 네 주 왕을 보호하지 아니하느냐…네 행한 이 일이 선치 못하도다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너희 주를 보호하지 아니하였으니 너희는 마땅히 죽일 자니라”(삼상 26:15, 16)고 부르짖었던 것을 기억하였다. 이 책망은 그의 가슴에 사무쳤고 그는 복수에 찬 그의 목적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분열시켜서 자기 자신을 높이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자신의 이기적 야망과 목적을 진전시키려고 죽은 왕가의 후계자를 이용하였다. 그는 백성들이 요나단을 사랑한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죽은 후의 명성은 소중히 간직되었고 사울의 최초의 성공적인 전쟁을 군사들은 잊지 않고 있었다. 이것을 이용 가치가 있는 좋은 근거로 삼은 이 반역의 지도자는 그의 계획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PP 698.3
요단에서 멀리 떨어진 마하나임은 다윗과 블레셋 사람이 공격하기 어려운 곳으로 매우 안전한 곳이었기 때문에 왕의 도성으로 선택하였다. 여기에서 이스보셋의 즉위식이 거행되었다. 처음에는 요단 동편에 있는 지파들만이 그의 통치를 받아들였으나 마침내 유다를 제외한 온 이스라엘에 확대되었다. 2년 동안 사울의 아들은 격리된 수도에서 그의 영광을 누렸다. 그러나 그의 권세를 온 이스라엘에 확대시키려고 계획한 아브넬은 침략 전쟁을 위하여 준비하였다. 그리하여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 PP 699.1
마침내 악의와 야망으로 세워진 왕권은 반역으로 전복되었다. 약하고 무능한 이스보셋에 대하여 몹시 분노한 아브넬은 다윗에게로 탈주하여 그에게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넘겨주겠다고 제의하였다. 왕이 그의 제의를 받아들였고 그는 그의 목적을 달하기 위해서는 체면도 잊어버렸다. 그러나 그처럼 용감하고 이름 높은 용사를 호의로 맞이한 것이 다윗의 군대의 총사령관 요압의 질투심을 자극하였다. 이스라엘과 유다 사이의 전쟁 중에 아브넬이 요압의 아우 아사헬을 죽인 까닭에 아브넬과 요압 사이는 혈원(血怨)이었다. 이제 아우의 죽음을 복수하고 장차 필적이 될 자를 제거할 기회를 본 요압은 비열하게 매복하였다가 아브넬을 살해할 기회를 잡았다. PP 699.2
이 반역적 습격에 대한 소식을 들은 다윗은 “넬의 아들 아브넬의 피에 대하여 나와 내 나라는 여호와 앞에 영원히 무죄하니 그 죄가 요압의 머리와 그 아비의 온 집으로 돌아갈지어다”고 부르짖었다. 다윗은 나라의 불안정한 상태와 살인자들 곧 요압의 아우 아비새가 그와 함께 범행하였으므로 그들의 권세와 지위를 고려하여 그 범죄를 공정히 처벌할 수는 없었으나 그는 공공연히 잔인하게 죽인 것에 대해 증오심을 나타냈다. 아브넬의 장사에는 백성의 존경이 함께 하였다. 군사들은 요압과 그들의 수령들과 함께 곡하는 예식에 참석하여 겉옷을 찢고 베옷을 입도록 명을 받았다. 왕은 장삿날에 금식함으로 그의 슬픔을 나타내고 상주처럼 상여를 따라갔다. 다윗은 무덤에서 살인자들에게 신랄한 견책이 된 애가(哀歌)를 음독(音讀)하였다. “왕이 아브넬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다음과 같이 불렀다. PP 699.3
“아브넬의 죽음이 어찌 미련한 자의 죽음 같은고
네 손이 결박되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차꼬에 채이지 아니하였거늘
불의한 자식의 앞에 엎드러짐같이
네가 엎드러졌도다.”
PP 700.1
그의 큰 원수였던 자에 대한 다윗의 관대한 처사는 온 이스라엘의 신임과 칭송을 받았다. “온 백성이 보고 기뻐하며 왕이 무슨 일을 하든지 무리가 다 기뻐하므로 이날에야 온 백성과 온 이스라엘이 넬의 아들 아브넬을 죽인 것이 왕이 한 바가 아닌 줄을 아니라.” 그의 신임하는 모사들과 시종들의 비공식 회합에서 왕은 그 죄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그가 원하는 바와 같이 살인자들을 처벌하지 못한 자신의 무능을 시인하고 그들을 하나님의 보응에 맡기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오늘 이스라엘의 방백이요 또는 대인이 죽은 것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기름부음을 받은 왕이 되었으나 오늘날 약하여서 스루야의 아들인 이 사람들을 제어하기가 너무 어려우니 여호와는 악행한 자에게 그 악한 대로 갚으실지로다.” PP 700.2
아브넬은 다윗에게 한 그의 제의와 진술에는 성실하였으나 그의 동기는 비열하고 이기적이었다. 그는 자신이 명예를 얻으려는 기대를 가지고 완고하게 하나님이 임명하신 왕에게 대항했다. 그가 그처럼 오랫동안 종사하던 일을 버리고 그의 직무 중에 최고의 지위를 얻으려는 희망을 가지고 다윗에게로 간 것은 울분과 상한 자존심과 감정 때문이었다. 만일 그가 그의 목적을 성공시켰다면 그의 재능과 야심과 그의 큰 감화력과 경건의 결핍은 다윗의 왕위와 민족의 평화와 번영을 위태롭게 하였을 것이다. PP 700.3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아브넬이 헤브론에서 죽었다 함을 듣고 손맥이 풀렸고 온 이스라엘이 놀라니라.” 나라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음이 분명했다. 뒤따른 반역으로 기우는 왕권이 완전히 몰락하고 말았다. 이스보셋은 그의 두 군장들에 의하여 무참하게 살해되었고 그들은 그의 목을 잘라 급히 유다 왕에게로 가져가 저희가 왕의 총애를 받고자 하였다. PP 700.4
그들은 저희 범죄에 대한 유혈의 증거물을 가지고 다윗의 앞에 나타나 “왕의 생명을 해하려 하던 원수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머리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오늘 우리 주 되신 왕의 원수를 사울과 그 자손에게 갚으셨나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친히 그의 왕위를 세워 주셨고 하나님께서 그의 원수들로부터 그를 구원해 주셨음으로 다윗은 반역자의 도움으로 자기의 권세를 확립하기를 원치 않았다. 다윗은 이 살인자들에게 사울을 죽인 것을 자랑하던 자에게 임했던 운명을 말하고 첨가하여 말하기를 “하물며 악인이 의인을 그 집 침상 위에서 죽인 것이겠느냐 그런즉 내가 저의 피흘린 죄를 너희에게 갚아서 너희를 이 땅에서 없이하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소년들을 명하매 곧 저희를 죽이고…이스보셋의 머리를 가져다가 헤브론에서 아브넬의 무덤에 장사하였더라.” PP 701.1
이스보셋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들 사이에는 일반적으로 다윗이 온 지파의 왕이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와 말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는 왕의 골육이니이다.” 그들은 이렇게 선언했다.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한 자는 왕이시었고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매 다윗왕이 헤브론에서 여호와 앞에서 저희와 언약을 세웠”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섭리를 통하여 그가 왕위에 오를 길이 열렸다. 다윗은 개인의 야망을 만족시키려 하지 않았으니 이는 그가 자기에게 이르러 온 영예를 구하지 않았던 까닭이었다. PP 701.2
아론과 레위인의 후손 8천명 이상이 다윗을 시중들었다. 백성들의 감정의 변화는 현저했고 결정적이었다. 변혁은 저희가 행하고 있는 큰 사업에 적합하도록 조용하고 위엄을 갖추어 진행되었다. 전에 사울의 신하였던 거의 50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헤브론과 그 주위에 운집했다. 모든 들과 골짜기는 군중들로 생기가 돌았다. 즉위식 시간이 정해졌다. 사울의 궁정에서 쫓겨나 그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하여 산과 들과 토굴로 도망하여 다니던 다윗이 인간이 동포에게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영광을 받으려는 순간이었다. 성스러운 직무를 행할 때에 입는 예복을 입은 제사장들과 장로들, 번쩍이는 창을 들고 투구를 쓴 장교와 병사들, 먼 곳에서 온 외국인들이 택함을 받은 왕의 즉위식을 보려고 서 있었다. 다윗은 임금의 의복으로 성장(盛裝)하였다. 대제사장은 그의 머리에 거룩한 기름을 부었으니 이는 사무엘이 그의 머리에 기름을 부은 것은 왕의 즉위식에서 행해질 것을 예표한 까닭이었다. 시간이 이르러 다윗은 엄숙한 의식에 의하여 하나님의 대리자의 직무에 성별되었다. 그의 손에는 홀이 쥐어졌다. 의로 통치하겠다는 그의 서약이 기록되었고 백성들은 충성을 맹세하였다. 그의 머리에는 왕관이 씌어지고 대관식은 끝났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왕을 모셨다. 여호와를 위하여 참을성 있게 기다린 다윗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것을 보았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삼하 5:10). PP 7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