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렌 지 화잇 자서전
또 다른 믿음의 시련
학기가 계속되고 자녀들의 편의를 위해 가족들이 이사해 오면서 식당 위에 마련된 100석 정도의 임시 예배당으로는 안식일학교 학생들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지난 몇 년 동안에 안식일 집회는 먼저 힐리호텔의 식당에서 열렸었고, 그 후에는 어두컴컴하고 불편한 제재소의 지붕 밑 방에서 드렸다. 이 작은 예배당은 제재소 다락보다 훨씬 좋은 집회 장소이나 이제 그것도 너무 좁게 되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지 많이 논의한 끝에, 형제들은 모든 사람의 필요를 충분히 채우고도 남는 크고 산뜻하고 널찍한 교회를 세우기로 결정하였다. LS 366.1
1898년 6월에 열린 기도 주일 동안 화잇 여사는 이 경험을 이렇게 말하였다. LS 366.2
“이 집회소를 건립할 때가 왔을 때, 믿음과 충성에 대한 또 다른 시험이 있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논의하기 위해 회의를 하였다. 그 길은 난관으로 에워싸인 듯하였다. 어떤 사람은 ‘작은 건물을 둘러막아 만들고, 자금이 더 확보되면 확장하도록 합시다. 지금으로서는 우리가 원하는 그런 집을 완공하기가 불가능합니다’라고 말하였다. 다른 사람은 ‘넓은 집을 세울 수 있는 돈을 얻을 때까지 기다립시다’라고 말하였다. 우리는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밤중에, ‘일어나서 지체하지 말고 교회를 세우라’는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였다. LS 366.3
그래서, 우리는 그 일을 직영(直營)으로 하기로 하고 믿음으로 전진하여 착공하기로 결정하였다. 바로 그 이튿날 밤, 집회소를 건립하는 일을 돕기 위해 … 남아프리카에서 200파운드의 환어음을 보내 왔다. 우리의 믿음이 시험을 받았었고, 우리가 그 사업을 착공하기로 결정하자 주님께서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이처럼 큰 선물을 우리 손에 쥐어 주셨다. 이러한 격려를 받고 그 사업은 열렬하게 시작되었다. 학교 운영회가 대지와 100 파운드를, 연합회가 200 파운드를 주었고, 교회 신자들이 그들이 바칠 수 있는 모든 것을 바쳤다. 교회 밖에서 후원자들이 도왔고, 건축자들은 돈이나 다름없는 귀중한 시간의 일부를 드렸다. 그렇게 하여, 공사가 끝나고, 우리는 사백 명이 앉을 수 있는 아름다운 건물을 갖게 되었다.”* LS 367.1
그 동안 학교는 번창하고 상당히 많은 청년 남녀들을 가르쳐서 예수님의 봉사 사업에 나아갈 준비를 갖추게 하였다. 1898년 10월 14-24일까지 브리스베인에서 열린 퀸즈랜드 장막 부흥회에서 화잇 여사는 학교발전에 있어서 가장 고무적이었던 면들을 다음과 같이 회고하였다. LS 367.2
“첫해 동안, … 약 60명의 출석생 중 약 30명 가량이 16세 이상이었다. 이 중에서 방학 동안에 우리 교회 사업 분야에서 일하도록 열 명이 채용되었다. 이듬해에는 100명이 참석했는데, 50명이 16세 이상이었고 그 중에서 32명이 방학 동안에 일할 수 있는 확실한 일자리를 찾았다. 그들 중 25명은 합회들이나 종교 사업 단체에 고용되었다.”* LS 36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