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뽑은 기별 1
51 장 살아있는 포도나무와 연합함*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인간의 마음을 거듭나게 하고 영혼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젖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거룩한 능력밖에 없으며 그 능력은 주님께서 위하여 돌아가신 영혼들에게 언제나 사랑을 나타낸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이다. 사람이 하나님께 대하여 회개할 때에 그에게 새로운 도덕적인 감각이 생기게 되고 새로운 동기의 힘이 주어지며 그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물들을 사랑하게 되는데 그의 생애는 예수님의 생명에 이르는 불변의 약속들의 금사슬로 묶이게 될 것이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형언할 수 없는 감사함이 그의 영혼 안에 충만하게 될 것이며 축복을 받은 자의 언어는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 (시 18:35) 라고 찬양할 것이다. 1SM 336.1
그러나 죄를 이기려는 저들 자신의 결정적인 노력이 없이 요행을 따라 품성이 변화되기를 기대하는 자들은 실망하게 될 것이다. 우리들이 예수님만 바라본다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 주님께 나오는 모든 영혼들을 모두 구원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 우리들이 끊임없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오로지 우리들의 옛 성품이 다시 지배권을 얻어 사단이 우리들을 그의 포로가 될 올무들을 펴는 일이다. 우리들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며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므로 (빌 2:13 참고) 우리들은 두려움과 떨림으로 우리들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역 안에서 거룩하심같이 우리들 자신의 영역 안에서 우리들의 제한된 능력으로 거룩하게 되어야 한다. 우리들의 능력이 미치는 범위 내에서 우리들은 진리와 사랑과 거룩한 품성의 탁월성을 나타내 보여야 한다. 밀초로 인장을 찍는 것처럼 영혼은 하나님의 영의 인을 받게 되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게 된다. 1SM 336.2
우리들은 매일 영적 사랑스러움 안에서 자라나야 한다. 우리들은 때때로 거룩하신 모본을 닮는 노력에 있어서 실패하게 될 것이다. 또한 때때로 우리들의 허물들과 실수로 인하여 예수님의 발 아래 꿇어 엎드려 눈물을 흘릴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실망해서는 안 된다. 우리들은 전보다 더욱 열심히 기도하여야 하며 더욱 든든히 믿어야 하고 우리 주님을 닮는 일에 성장하기 위하여 더욱 강한 견인성을 가지고 또다시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우리들이 자신의 능력을 불신하게 될 때에 우리 구세주의 능력을 의존하게 될 것이며 우리 힘의 근원이 되시고 우리들의 하나님이 되시는 구세주를 찬양하게 될 것이다. 1SM 337.1
그리스도와 연합이 있는 곳에는 어디든지 사랑이 있다. 우리들이 아무리 다른 열매들을 많이 맺는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다면 그 열매들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과 우리 이웃에 대한 사랑은 우리 신앙의 근본적인 본질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사랑할 수 없는 자는 그분의 자녀들을 사랑할 수 없다. 우리들이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될 때에 그리스도의 정신을 갖게 된다. 순결함과 사랑이 품성을 빛나게 할 것이며 온유함과 진리가 생애를 주관하게 될 것이다. 얼굴의 표정 자체도 변하게 된다. 그리스도께서 영혼 안에 거하실 때에 변화케 하시는 능력을 발휘할 것이며 그의 외모에도 마음 속에 있는 화평과 기쁨을 증거하는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우리들은 마치 가지가 포도나무에서 영양소를 흡수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사랑을 마시게 된다. 우리들이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을 받게 되고 산 포도나무가 되시는 주심과 연합함으로 섬유질로 이어질 때 우리들은 풍성한 산 열매로서 그 사실을 증거하게 될 것이다. 만약 우리들이 빛과 연결될 때 우리들은 빛의 통로가 될 것이며 우리들의 말과 행실로써 세상의 빛을 반사하게 될 것이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땅을 하늘에 잇는 사랑의 줄로 묶이게 될 것이며 유한한 인간을 무한하신 하나님께 연결시키는 사랑의 줄로 결박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비취는 빛은 주님을 따르는 자들의 마음에도 비췰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것이다. 1SM 337.2
우리들은 바라봄으로 변하게 된다. 거룩한 모본이신 주님의 완전하심을 명상할 때에 우리들은 완전한 변화를 입으려는 욕망을 품게 될 것이며 주님의 순결하신 형상을 따라 새로 지음을 입게 될 것이다. 품성의 변화가 이루어지며 진노의 자식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때문인 것이다. 그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나가게 되며 신령하게 되어 신령한 사물들을 분별한다. 하나님의 지혜는 그의 정신을 일깨워 주며 하나님의 율법의 기이한 이치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사람이 진리로 말미암아 회개하게 될 때에 품성이 변화하는 작업이 시작된다. 또한 그에게는 이해력이 크게 증가하게 된다. 그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가 되며 그리스도의 정신을 소유하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뜻으로 삼게 될 것이다. 1SM 338.1
자기 자신을 성령의 지도하심에 전적으로 맡길 때에 그의 정신이 확장되고 계발되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 가운데서 편벽되지 않고 결함이 없는 교육을 받게 될 것이며 오직 균형과 완전을 추구하는 계발된 품성을 갖게 될 것이다. 흔들리는 의지와 무기력한 품성에 나타나는 유약성은 극복하게 되고 계속적인 헌신과 경건의 생애는 사람으로 그리스도와 밀접한 관계를 맺게 하므로 그리스도의 정신을 가지게 한다. 그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건전한 정신과 원칙적인 사상을 갖게 된다. 그의 식별력은 투철하고 하나님에게서 오는 지혜를 나타내게 된다. 야고보는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약 3:13).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약 3:17, 18) 고 말하였다. 이러한 지혜야말로 구원의 잔을 받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서 나타나는 지혜일 것이다. 죄를 범한 자에게 사유하심을 주는 이 구원은 그에게 전능하신 주님의 엄밀한 검사를 받게 될 의를 나타낼 것이며 하나님과 인간의 강한 원수를 이기는 승리를 안겨 주고 구원을 받는 자를 위하여 영원한 생명과 기쁨을 주며 따라서 이 구원은 기별을 듣고 기뻐하는 겸손한 자에게 즐거움의 주제가 될 것이다. 1SM 338.2
잃어버린 양에 대한 비유
목자가 아흔 아흡 마리를 버려두고 잃어버린 단 한 마리의 양을 찾기 위하여 나선 잃어버린 양에 대한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비유는 그리스도의 사업과 죄인의 상태와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온 우주가 기뻐하는 것을 설명해 주고 있다. 목자는 양 무리에 대하여 방관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으며, “나에게 아흔 아흡 마리가 있는데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하여 나선다는 것은 너무나 골치 아픈 일이다. 내버려두면 혼자 돌아올 터이므로 양 우리의 문만 열어 두면 언젠가는 들어올 테지 … 그러나 내가 나서서 그 놈을 찾을 수는 없어” 라고 말하지 않았다. 목자는 결코 그런 태도를 취할 수 없었다. 한 마리의 양을 잃어버린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목자의 얼굴에는 슬픔과 근심으로 가득 차게 된다. 그는 양의 수를 세고 또 세보며 확실히 한 마리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될 때에 그는 편히 쉴 수 없다. 그는 아흔 아홉 마리를 양우리에 남겨두고 아무리 그 밤이 캄캄하고 격렬한 광풍이 불지라도, 그의 갈 길이 아무리 위험하고 사나울지라도, 그의 수고가 아무리 지루하고 고달픈 것일지라도 그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그는 지칠 줄 모르고 뒤로 물어서지 않는다. 그가 잃었던 양을 찾게 되었을 때에 지치고 기진맥진한 양을 자기 어깨에 메고 그의 수고가 헛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몹시 기뻐하고 감사하며 즐거운 노래를 부르며 돌아와서 그의 친구들과 이웃들에게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눅 15:6) 고 말할 것이다. 이처럼 위대하신 목자께서 죄 가운데서 방황하는 죄인을 찾게 되었을 때에 하늘의 천사들은 목자의 즐거운 노래에 화답할 것이다. 잃어버린 자를 찾았을 때에 하늘과 땅은 감사와 기쁨으로 연합하게 된다.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눅 15:7). 1SM 33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