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뽑은 기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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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장 와서 구하고 찾으라*

인간이 자기 자신을 구원하는 일은 불가능한 것이다. 인간은 이 문제에 관하여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있을는지 모르나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는 없다. 오직 그리스도의 의만이 인간의 구원을 가능케 할 수 있으며 이 의는 하나님의 은사이다. 이 의는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환영받을 손님으로서 나타날 때 입어야 할 예복이다. 지체하지 않고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붙잡을 때에 그대들은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될 것이며 세상의 빛이 될 것이다. 1SM 331.1

그리스도는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 (렘 23:6) 시며 믿음을 통하여 각자는 “여호와는 나의 의시라” 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믿음으로 이 하나님의 은사를 굳게 붙잡을 때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우리 입술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며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 1:29)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때에 우리들은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구원의 계획에 관하여 말할 수 있을 것이며, 이 세상이 죄의 저주 밑에 있을 때에 주님께서는 타락하고 소망이 없는 죄인들에게 자비의 조건들을 제시하셨으며 당신의 은혜의 가치와 의미를 나타내 보이셨다. 은혜란 공로가 없이 받는 호의 (好意) 이다. 죄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하는 천사들은 저들에게 은혜를 베풀었다 할지라도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며 다만 우리들의 범죄한 상태만이 자비한 하나님께로부터 은혜의 역사하심을 요구하게 된다. 우리 구세주께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우리들을 찾아나서시고 양우리로 다시 데려오신 것은 은혜로운 행위였다. 1SM 331.2

그대들의 영혼 속에 어떤 부족감을 느끼고 있지 않은가? 그대들은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하지 않은가? 만약 그러한 느낌이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그대들의 마음에 역사하셔서 필요성을 느끼게 하셨다는 증거이며 주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까닭은 그대들 스스로 할 수 없는 것들을 당신의 성령을 부어주심으로써 그대들을 위하여 행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내시기 위함이었다. 주님께서는 그대들이 주님의 자비를 갈급하고 주님의 권고를 바라며 주님의 사랑을 그리워하는 것 외에 아무런 까다로운 조건을 명세 (明細) 하지 않으셨다. “구하라!” 구하는 태도는 그대들이 필요성을 깨닫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며 만약 그대들이 믿음으로 구한다면 구하는 바를 얻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으로 약속하셨으며 그 약속은 어김이 없는 약속이다. 그대들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느끼고 아는 것만으로도 주님의 자비와 동정을 구할 수 있는 충분한 논증이 된다. 그대들이 하나님께 나올 수 있는 조건은 그대들이 거룩하게 되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며 다만 하나님께 간구하여 그대들이 모든 죄에서 정결함을 받고 모든 악에서 순결함을 입는 데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왜 더 기다릴 것인가? 왜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는가? 1SM 332.1

“오 주여, 당신께 이 몸을 바치나이다.
이것만이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이옵니다.”
1SM 332.2

만약 사단이 와서 그대들과 하나님 사이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고 그대들의 죄를 비난하며 하나님과 그분의 자비를 불신하고 의심하도록 유혹한다면 그대들은 이렇게 말하라. “나는 나의 허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나 사이가 벌어지는 일을 용납할 수 없다. 하나님은 나의 능력이시다. 비록 나의 죄들이 많지마는 나의 거룩한 대치물이시며 희생 제물이신 예수님께 이 모든 죄들이 지워졌다.” 1SM 332.3

“내 손으로 가져가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나
다만 나는 십자가에 매달릴 뿐이옵니다.”
1SM 332.4

인간은 아무도 자기 안에 있는 것이나 품성 가운데 있는 것으로 하나님께 자랑스럽게 천거할 수 있거나 하나님의 가납하심을 확실하게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낼 수 없다. 오직 하늘 아버지께서 세상의 생명을 위하여 주신 바 예수님을 통하여서만 죄인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통로를 발견할 수 있다. 오직 예수님께서만이 우리들의 구원자이시며 우리들의 대언자이시다. 중보자이신 주님 안에 사유하심과 화평과 의를 바랄 수 있는 유일한 소망이 있다. 그리스도의 흘리신 피의 공로에 의해서 죄의 상처를 입은 영혼이 온전하게 회복될 수 있다. 그리스도는 향기이시며 그대들의 탄원을 하늘 아버지께서 받으시게 하는 것은 거룩한 분향이다. 그 때에 그대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1SM 332.5

“단 한 번의 탄원도 없이, 내 모습 그대로 나왔나이다.
그러나 주님의 피가 나를 위하여 흘려진 바 되었으니,
그리고 나를 당신께로 오라고 부르시므로,
오,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여, 나는 왔나이다.”
1SM 333.1

그리스도께 나아오는 일은 엄격한 정신적 노력이나 번민이 요구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에 밝히신 구원의 조건들을 수락하는 것이다. 축복은 모든 자에게 값없이 주시는 것이다. 우리들에게 보내신 초청은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사 55:1, 2) 는 말씀이다. 1SM 333.2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된 의

그러면 와서 구하고 찾으라. 능력의 저장소는 공개되어 있으며 가득차 있고 값없이 얻을 수 있다. 겸비한 마음으로 나아오되 그대들이 하나님의 은총을 얻기 위한 공로를 세우기 위하여 어떤 선행을 쌓아야 한다거나 혹은 그리스도에게 나아오기 이전에 그대들 자신이 나아져야 하리라고 생각지 말 것이다. 그대들에게는 선을 행할 힘이 없으며 그대들의 상태를 개선할 수도 없다.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우리에게는 아무런 공로도 없으며 의도 없다.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흠 없으신 의를 옷 입지 않는 한 우리들의 죄상, 우리들의 연약성, 우리들의 인간적인 불완전성은 우리들로 감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하게 할 것이다. 우리들은 우리들 자신의 의가 아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의를 가지고 주님 안에 거하여야 한다. 그리할 때에 모든 이름보다도 뛰어나고 인간에게 주신 이름 중에서 인간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이름을 힘입어서 하나님의 허락들을 주장하면서 “주님, 저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는 당신의 도움을 얻기 위하여 당신의 손을 붙잡나이다. 당신의 손을 붙잡지 않으면 저는 멸망할 것이옵니다. 저는 지금 믿사옵니다” 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구세주께서는 회개한 죄인에게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 (요 6:37). “나는 네 구원이라” (시 35:3) 고 말씀하신다. 1SM 333.3

그대들이 그리스도의 이끄심에 호응하고 그대들 자신을 주님께 연합할 때 그대들은 구원하는 믿음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종교적인 사물들에 대하여 부주의한 태도로 말하고 진정한 영혼의 굶주림과 산 믿음이 없이 신령한 축복을 받기 위하여 기도한다면 아무런 유익을 얻지 못할 것이다. 호기심에 찬 군중들이 예수님께 가까이 접근해 있었으나 저들은 접촉에서 오는 아무런 강한 능력을 느끼지 못하였다. 그러나 12년 동안 병 중에 있던 불쌍하고 괴로워하는 여인이 간절한 필요를 느끼고 주님의 옷자락을 만졌을 때 그 여인은 치유의 능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여인이 만진 것은 믿음의 접촉이었으며 그리스도께서는 손을 댄 자가 있는 것을 아셨다. 주님께서는 자신에게서 능력이 나간 것을 아셨으며 따르는 무리를 돌아보시고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눅 8:45) 고 물으셨다. 그 질문에 놀란 제자들은 “주여 무리가 옹위하여 미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 하신대 여자가 스스로 숨기지 못할 줄을 알고 떨며 나아와 엎드리어 그 손 댄 연고와 곧 나은 것을 모든 사람 앞에서 고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 (눅 8:45-48). 그리스도와 더불어 산 접촉을 가지므로 유익을 얻게 하는 믿음은 우리들에게 지상 (至上) 의 선택과 완전한 신뢰와 전적인 헌신을 나타내게 한다. 사랑으로 역사하는 이 믿음이야말로 영혼을 순결케 한다. 이러한 믿음은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참된 순종을 보이는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의 생애 가운데서 역사한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인간에게 대한 사랑은 그리스도와 산 연합을 이루는 결과로서 생기는 것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 (롬 8:9) 다. 1SM 334.1

예수께서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 (요 15:5) 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에 내포된 뜻보다 더욱 밀접한 관계를 생각할 수 있을까? 가지의 섬유질은 포도나무의 섬유질과 동질의 것이다. 원줄기에서 가지에 이르는 생명과 힘과 영양의 유통은 막을 수 없는 것이며 지속적인 것이다. 뿌리에서 공급하는 영양소는 모든 가지에 이른다. 만약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주님에게서 영양소를 공급 받는다면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와 가져야 할 신자의 마땅한 관계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영혼 사이의 영적 관계는 오직 개인적 신앙을 통해서만 성립된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 (히 11:6) 한다. 왜냐하면 오직 믿음만이 우리들을 하늘의 능력과 연결케하며 흑암의 권세 잡은 자들과 대항하여 싸우는 싸움을 위하여 능력을 얻게 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일 5:4). 믿음은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임재하심에 관하여 영혼으로 쉽게 깨닫게 하며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을 유일한 목적으로 하여 그의 생애를 유지하게 한다. 따라서 믿음이 깊으면 깊을수록 하나님의 품성의 아름다움과 은혜의 탁월성을 밝히 식별하게 한다. 믿음이 있는 영혼은 천국의 분위기에서 호흡하며 하나님께서 우리 우편에 계시므로 우리들이 요동치 않게 될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될 때에 우리들은 세속에서 벗어나게 되며 만유의 으뜸이 되시며 온전히 사랑스러우신 주님을 바라보게 되며 주님을 바라보는 생애를 통하여 우리들은 당신의 형상으로 화하게 된다. 1SM 33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