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시대의 대쟁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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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바돌로매 제일 (祭日) 의 대학살

애굽의 속박에서 백성들을 구원해 내실 때에 그리스도께서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지도자가 되셨던 것처럼 사단은 무수한 순교자를 내는 무서운 일에 있어서 그의 부하들을 지휘하는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지도자가 되었다. 학살은 파리에서 7일간 계속되었는데, 최초의 3일간은 특히 광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심했다. 그리고 그 일은 왕의 특명에 의하여 파리 시가에만 국한되지 않고, 신교도들이 거주하는 모든 도시와 촌락에까지 퍼져 나갔다. 그 일은 연령과 성별을 구별하지 않았다. 천진한 어린아이들과 백발노인도 가리지 않았다. 귀족과 농부, 노인과 청년, 어머니와 아이, 그 모든 사람들을 함께 살육하였다. 프랑스 전국에서 학살이 2개월간 계속되었다. 그리하여 바로 국가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7만 명이나 죽었다. GC 272.2

“학살의 보도가 로마에 이르자 성직자들의 기쁨은 한이 없었다. 로렌의 추기경은 그 사자에게 1천 크라운을 상급으로 주었고, 성 안젤로에서는 축포를 쏘았고, 모든 교회의 첨탑에서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고, 축화 (祝火) 는 밤새도록 꺼지지 않았다. 법왕 그레고리우스 13세는 추기경과 중요한 승려들을 데리고 큰 행렬을 지어 성 루이의 교당으로 갔는데, 그 곳에서 로렌의 추기경이 테 데움 (Te Deum) 을 낭송했다. …또 이 학살을 기념하는 메달이 주조되었고, 바티칸 궁전에서는 바사리 (Vasari) 의 솜씨로 석 장의 벽화, 곧 제독 (提督) 을 습격하는 장면, 학살을 음모하는 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왕, 실제로 학살을 하고 있는 장면들이 그려졌다. 그레고리우스 법왕은 카알 황제에게 황금 장미를 보냈으며,…그 학살 4개월 후에…그는 한 프랑스 신부의 설교를 만족한 마음으로 들었다. …그 신부는 그 학살의 날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날에 가장 거룩한 신부 (神父) 가 무한한 행복과 기쁨으로 보고를 받으며, 그는 위엄을 갖추고 하나님과 성 루이에게 감사를 드리고자 나아갔다.’” (Henry White, The Massacre of St.Bartholomew, ch.14, Par.34). GC 273.1

성 바돌로매 대학살을 하도록 충동한 바로 그 정신은 프랑스 혁명에도 나타났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기꾼으로 선언하고, 프랑스의 무신론자들은 소리를 높여 “염치 없는 자를 박멸하자”고 부르짖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를 가리킨 것이었다. 하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대담한 모독과 가증한 악이 서로 손을 맞잡았으며, 가장 비루한 인물, 잔인하고 사악하기 더할나위 없는 자, 비인도적인 자들이 무한한 존경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모든 일에 있어서 사단에게 최고의 존경이 주어졌다. 그와 반면에 진리와 순결과 이타적 사랑으로 특징지어 있는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GC 27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