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보내는 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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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느냐?

때때로 그 불신자는 종교에 호의를 가졌고 다만 한 가지 그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것 밖에는 모두가 다 반려자로서 만족할 만한 남자라는 구실을 말한다. 비록 불신자와 일생을 위한 연합을 하는 것이 부적당하다는 신자의 더 좋은 판단이 제의된다. 할지라도 열건 중에 아홉건은 자신의 경향대로 한다. 결혼 서약이 이루어지는 순간 영적 타락은 시작되고 종교에 대한 호의는 둔하여지며 신앙의 요새들은 계속하여 하나씩 파괴되어 두 사람이 나란히 사단의 검은 깃발 아래 서게 되는 데까지 나아가게 된다. 결혼 잔치에 있어서까지라도 세속적 정신은 양심과 신앙과 진리를 누른다. 새 가정에서 기도 시간은 존중 되지 않는다. 신랑과 신부는 서로는 선택하였으나 예수는 버렸다. CCh 121.3

믿지 않는 자는 아마 처음에는 그 새로운 관계에 대하여 반대를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나 성경 진리의 주제가 제시되어 주의와 고려를 촉구할 때에는 “그대는 내가 어떠한 사람인 것을 알고 나와 결혼한 것이 아닌가. 나는 나의 권리를 침해받고 싶지 않다. 이제부터는 그대의 특이한 견해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 두기로 하자”라는 감정이 일시에 일어난다. 만일 신자가 자신의 신앙에 대해 어떤 특별한 열성을 나타내 보이는 경우에, 그리스도인 경험에 대하여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불친절한 듯이 보여질 것이다. CCh 121.4

신자는 자신의 새로운 관계에 있어서 자신이 선택한 짝에게 다소간에 양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교적이요 세속적인 오락들이 장려된다. 처음에는 이런 일을 함에 있어 크게 싫은 기분이 들지만 진리에 대한 관심은 점차 적어지고 드디어 믿음은 의심과 불신으로 바꾸어진다. 굳세고 양심적인 신자요 헌신한 그리스도의 제자가 지금처럼 의심하고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이 될 줄은 아무도 생각지 못하였을 것이다. 아! 그 변화는 지혜롭지 못한 결혼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다. CCh 121.5

세속적 결연을 맺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사단은 많은 젊은 남녀가 결혼하는 것을 목도하는 그 때가 바로 그들의 종교적 경험과 유용성을 끝마치는 때 임을 잘 안다. 그들은 그리스도에게서 잃어버린 바 된다. 그들은 혹 얼마 동안은 그리스도인의 생애를 하려고 노력할 것이나 그들의 모든 노력은 반대방향으로 나아가는 강한 힘의 저항을 받아야 한다. 전에는 그들의 신앙과 소망을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특권과 기쁨이 되었으나 이제는 그들의 운명을 함께한 이가 그것에 대하여 관심이 없음을 앎으로 그 주제를 말하기가 싫어지게 된다. 그 결과 귀한 진리에 대한 믿음은 마음으로부터 사라지고 사단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들 주위에 회의론의 피륙을 짜 놓는다. CCh 122.1

“두 사람이 합의하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으며”,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그러나 다음의 광경은 얼마나 이상할까? 그처럼 밀접하게 연합한 이들 중에 하나는 신앙 가운데 있는데 다른 하나는 냉담하고 무관심하다면, 하나는 영원한 생명을 찾고 있는데 다른 하나는 죽음으로 가는 넓은 길을 가고 있다면 말이다. CCh 122.2

허다한 사람들이 아직 교회에 들어오지 않은 이들로 더불어 결혼함으로 그리스도와 하늘을 희생시켰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차라리 가련한 인간과의 교제를 택할 만큼 그리스도의 사랑과 그 교제가 그처럼 작게 평가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과연 귀하신 구주를 사랑하지 않는 그런 사람을 위하여 하늘의 기쁨을 걸고 모험하고자 할 만큼 하늘을 하찮게 평가하는가? CCh 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