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는 이들

192/233

의회 앞에 선 루터

드디어 루터는 의회 앞에 서게 되었다. 황제는 보좌에 앉았다. 그는 제국내의 요인(要人)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마르틴 루터가 자기의 신앙에 대해 변호하기 위하여 섰던 회의처럼 장엄한 집회는 전에 도무지 없었다. SR 347.1

루터가 보름스회의에 서게 된 사실 그 자체가 진리의 현저한 승리였다. 법왕에게서 일단 유죄 선고를 받은 사람이 다른 법정에서 심문을 받는다는 것은 사실상 법왕의 최상권을 멸시하는 것이었다. 로마교회에서 이미 출교를 당하였고 모든 교인들과 교제하지 못하도록 금지당한 루터가 이제 다시 보호받을 수 있는 보증을 받았고 제국내의 최고 권위자들 앞에서 말할 수 있는 허락을 받은 것이다. 로마교회는 그에게 잠잠하라고 명하였었다. 그러나 각처의 그리스도교국에서 온 수천명의 청중 앞에서 그는 지금 막 말을 하려고 서 있다. 루터는 침착하고 평화스러우면서도 용감하고 고결한 태도로 하나님의 증인으로서 지상의 거물들 앞에 섰다. 그는 난폭하거나 격렬한 감정이 아니라 부드럽고 겸손한 어조로 대답하였다. 그의 태도는 겸손과 존경으로 가득 찼고 군중들이 놀랄만큼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기쁨을 표시하였다. SR 347.2

완고하게도 빛에 대해 눈을 감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결심한 자들은 루터가 하는 말의 위력에 대해 격분하였다. 그의 진술이 끝났을 때 의회의 대변자는 분노하여 “너는 제시된 질문에 대하여 대답하지 않았다. … 너는 명확한 대답을 해야 한다. … 즉 너는 취소하겠느냐, 하지 않겠느냐?”라고 따졌다. SR 347.3

개혁자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지극히 존엄하신 폐하와 고귀하신 왕후(王侯) 제위께서 저에게 간단 명료하고 확실한 답변을 요구하신다면 이제 제가 대답하겠습니다. 저는 저의 신앙을 법왕에게나 또는 의회에 굴복시킬 수 없습니다. 그 이유를 말씀드리면 법왕이나 의회는 누차 오류를 범하여 피차간에도 모순된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경의 증거로나 또는 명확한 이론으로나 또는 제가 인용한 성구에 대하여 저를 설복시킬 수 없는 한, 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저의 양심을 순복하게 할 수 없다면 저는 취소할 수도 없고 또한 취소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자기 양심을 거역해서 말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제가 서 있습니다. 이 외에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입니다. 하나님이여! 저를 도와주시옵소서! 아멘.” SR 347.4

이와 같이 이 의로운 사람 루터는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섰다. 하늘의 광채가 그의 얼굴에 비쳤다. 그의 품격의 위대함과 순결이, 그리고 마음의 평화와 기쁨이 그가 오류의 세력을 대항해서 증언할 때 듣는 모든 사람에게 보여졌으며 세상을 이기는 그 믿음의 우월성을 모두가 목격할 수 있었다. SR 348.1

루터는 맹렬한 세상의 세력이 폭풍처럼 그에게 밀려 올지라도 아무런 해도 받지 아니하고 반석처럼 굳건히 서서 추호도 요동하지 않았다. 단순하고도 힘있는 그의 말과 조금도 두려운 기색이 없는 그의 태도와 침착함, 말하는 듯한 눈, 그리고 그의 말과 행위에 나타난 움직일 수 없는 결심이 청중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어떠한 약속이나 위협으로도 그를 로마 법왕의 명령에 굴종시킬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SR 348.2

그리스도께서 루터의 증언을 통하여 힘있고 권세 있게 말씀하셨으므로 친구나 원수를 막론하고 모두 놀라고 경탄해 마지 않았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 의회에 직접 나타나 제국의 중신들의 마음에 깊은 감동을 주셨던 것이다. 영주들 가운데는 루터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기탄 없이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일시 진리의 감동을 받았으나 그것이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다. 어떤 사람들은 감동받은 것을 당장에 표시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성경을 깊이 연구하여 후일 개혁 운동의 유력한 지원자가 된 이들도 있었다. SR 348.3

선후 프레데릭은 루터가 의회 앞에 나타나는 것을 간절히 기다렸다가 그의 진술을 열심히 들었다. 그는 그 박사의 용기와 침착하고 확고 부동한 태도를 보고 기뻐하였으며 그의 보호자가 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는 논쟁할 때에 양편을 비교하면서 법왕과 왕들의 지혜로도 진리의 능력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하는 것을 알았다. 이 때에 법왕권은 모든 국가, 모든 시대에 걸쳐 그 영향을 느낄 수 있는 결정적인 패배를 당하였다. SR 349.1

개혁자가 단 한 가지라도 포기했더라면 사단과 그의 군대는 승리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확고 부동한 태도는 교회를 해방시키고 새롭고 더 나은 시대를 여는 방편이 되었다. 신앙 문제를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믿는 바를 실천한 이 한 사람의 감화는 그 시대의 교회와 세계뿐 아니라 다가오는 모든 세대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의 견인 불발의 의지와 충성은 세상 끝에 이르기까지 그와 같은 경험을 당하는 모든 사람을 격려해 줄 것이다. 하나님의 권능과 주권은 인간의 회의나 사단의 강한 능력을 훨씬 초월하는 것이다. SR 349.2

나는 루터가 죄를 책망하고 진리를 옹호하는 데 불타는 열성과 아무것도 무서워하지 않는 대담함을 보았다. 그는 악한 사람들이나 마귀를 조금도 개의치 않고 자기와 함께 하시는 이가 그 모든 것보다 더욱 강하다는 것을 알았다. 루터는 열성과 용맹과 담대함을 가졌으며 때로는 도에 지나칠 염려가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루터와 대조되는 성격을 가진 멜랑히톤을 세워 개혁 사업을 진행하는 동안 루터를 돕게 하셨다. 멜랑히톤은 겁이 많고 무서움을 잘 타며 조심성과 참을성이 많았다. 그는 하나님의 은총을 크게 받았다. 그는 성경 지식이 풍부하였으며 탁월한 판단력과 지혜가 있었다. 하나님의 사업에 대한 그의 애정은 루터와 다를 바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이 두 사람의 마음을 굳게 연결시키셔서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친구가 되게 하셨다. 멜랑히톤이 겁을 먹고 주저할 위험에 빠졌을 때에는 루터가 큰 도움이 되었고 루터가 너무 과격하게 행동할 위험이 있을 때에는 멜랑히톤이 그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SR 349.3

멜랑히톤의 멀리 내다보는 통찰력은 종종 루터가 혼자서 그 사업을 진행시켰다면 당하였을 뻔한 어려운 문제를 제거하였고 또한 멜랑히톤 혼자만으로 이 사업을 하게 하였더라면 앞으로 진행시킬 수 없었을 뻔했던 것을 밀고 나갈 수 있게 했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이 두 사람을 택하사 개혁 사업을 진행하게 하신 사실을 나는 깨달았다. SR 3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