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지기에게 보내는 기별
과부와 고아의 요구
우리의 도움을 요청하는 자마다 닥치는 대로 주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렇게 함으로 게으름과 부절제와 낭비를 조장하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그대의 문전에 와서 동냥하면 빈손으로 거저 돌려보내지 말라. 그대가 가진 어떤 것이든 먹을 것을 주라. 그대는 그의 환경을 모르지만 그의 빈곤이 불행의 결과 때문인지도 모른다. CS 163.1
그러나 우리의 도움이 요구되는 모든 자들 중에서 고아와 과부는 우리의 동정과 관심을 가장 크게 요구한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이니라” (약 1:27). CS 163.2
하나님의 영원하신 약속을 의지하고 믿음 안에서 잠든 아버지는 주께서 그들을 돌보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자기의 사랑하는 가족들을 남겨 두고 떠났다. 그러면 주께서는 이 유가족들을 어떻게 부양하시는가? 주께서는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시는 이적을 행하지 않으시고, 음식을 물고 가도록 까마귀를 보내지도 않으시지만 인간의 마음에 이적을 행하신다. 주님은 영혼 속에서 이기심을 몰아내시고 자비의 샘을 여신다. 주께서는 고난중에 있는 자들과 유가족들, 가난한 빈민과 고아를 신자들의 부드러운 자비심에 의탁하심으로 주님을 따르노라는 자들의 사랑을 시험하신다. 이들은 특별한 의미에서 그리스도께서 돌보시는 지극히 작은 자들이요, 이들을 등한시하는 것은 주님을 저버리는 것이다. 이런 자들을 등한히하는 것은 주의 고난당하는 자들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등한히하는 것이다. CS 163.3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행한 모든 진정한 행위는 마치 주님께 행하는 것과 똑같이 주님께 가납된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고난당하는 인생의 문제를 자기의 문제와 동일시하기 때문이요, 주께서 당신의 교회에게 궁핍한 자와 고난당하는 자를 돕고 축복함으로 당신께 봉사하는 숭고한 일을 맡기신 연고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그들에게 봉사하는 모든 자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임할 것이다. CS 164.1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가 되기까지는 돌보아야 할 고아들이 있을 것이다. 만일 우리 교인들이 그들을 위하여 부드러운 자비와 사랑과 친절을 베풀지 않으면 그들은 더 많은 고난을 당할 것이다. 주께서 우리에게 명하시기를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라”고 하셨다. 기독교는 이들 집없는 자들을 위해서 부모들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기도와 행실 가운데 나타나는 과부와 고아들을 위한 자비심은 미구에 보상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 앞에 기억될 것이다. CS 16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