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호봉사
22 장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
가난한 자들의 요구를 채워 줌 — 우리 주위의 도처에서 우리는 결핍과 고통을 본다. 가정들은 음식이 필요하며 어린 것들은 밥달라고 부르짖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편리한 것이라곤 거의없이 단지 오막살이에서 살고 있다. 가난한 자들의 부르짖음은 하늘에 상달된다. 하나님께서 보시고 하나님께서 들으신다. — 교회증언 6권 385 WM 188.1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섭리로써 땅을 은혜의 선물로 채우시고 생애를 안락하게 해주는 땅의 창고를 채워 주셨지만 궁핍과 불행이 어느 곳에나 있다. 하나님의 넓은 섭리로 모든 사람의 필요가 채워지리 만큼 풍성한 것이 당신의 인간 대리자들의 손에 주어졌지마는 하나님의 청지기들은 불충실하다. 소위 그리스도교계는 모든 배고픈 자들의 필요를 채워 주고, 헐벗은 자들을 입혀 준다는 지나친 과시를 한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간직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기적인 향락을 위하여, 식욕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독주와 진미를 위하여, 호화로운 주택과 가구와 의복들을 위하여 주님의 돈을 낭비하고 있는 한편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는 동정의 표정을 나타내거나 한 마디의 자비의 말조차 거의 하지 않는다. WM 188.2
소위 그리스도교국이라 하는 우리나라의 바로 중심부에 어떠한 불행이 존재해 있는가? 우리나라 대도시들 안에 있는 가난한 자들의 상태를 생각해 보라. 그 도시들 안에는 짐승만큼도 보호와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무수하다. 얼굴에 부도덕과 사악함이 찍혀 있는 헐벗고 거의 기사상태 (饑死狀態) 에 이른 비참한 아이들이 무수하다. 가정들이 비참한 셋방에 함께 모여 있는데, 그들 중 대부분은 습기와 불결로 악취가 나는 어두운 움막들이다. 어린 아이들이 이 끔직한 곳에서 탄생한다. 유년기와 청년기에 매력적인 것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오관을 즐겁게 하도록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천연계의 사물들의 미를 전혀 보지 못한다. 이 어린 아이들은 그들 주위에 있는 저질의 교훈과, 불행, 악한 모본으로 성품이 꼴 지어지고 형성되어 자라나도록 방임된다. 그들은 오직 모독적인 언사에서만 하나님의 이름을 들을 뿐이다. 불순한 말들, 술과 담배 냄새, 각종 도덕적 타락들을 눈으로 보고 오관을 타락시킨다. 이 비참한 거처들로부터 음식물과 입을 것을 달라는 가련한 부르짖음이 기도에 대하여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 많은 사람의 입에서 튀어 나온다. WM 188.3
우리 교회를 통하여 이루어져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별로 생각지도 않고, 거의 손도 대지 않은 일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고 말씀하신다 (마 25:35, 36). 어떤 사람들은 만일 그들이 이 사업을 위하여 돈을 내기만 하면 그것이 그들이 해야 할 일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이다. 금전의 기부가 개인적인 봉사를 대신할 수 없다. 우리는 재물을 바치는 것이 정당한 일이며, 더욱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힘과 기회가 있는 대로 모든 사람에게 개인적 봉사가 요구된다. WM 189.1
가난한 자, 압제받는 자, 고통당하는 자, 궁핍한 자들을 모으는 일은 이 시대를 위한 진리를 믿는 모든 교회가 오래 전부터 해 왔어야 할 바로 그 사업이다. 배고픈 자들을 먹이고, 쫓겨난 가난한 자들을 우리 가정으로 데려오고, 우리로 하여금 바로 인간의 불행의 심연에까지 내려가서 스스로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자들을 도울 수 있게 해줄 은혜와 능력을 매일 하나님께로부터 받으면서 육체적 필요를 채워 주는 일에 있어서 사마리아인의 부드러운 동정심을 보여야 한다. 우리는 이 일을 하는 중에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보일 절호의 기회를 갖게 된다. — 교회증언 6권 274-276 WM 189.2
그대의 이웃을 도움으로 시작하라 — 모든 교인은 이웃에 사는 사람들을 위하여 활동하는 것이 특별한 의무임을 느껴야 한다. 그대가 종교적 사물에 관심이 없는 자들을 어떻게 최선껏 도울 수 있을 것인지 연구하라. 그대가 친구들과 이웃들을 방문할 때 그들의 육신적 복리에는 물론 영적 복리에도 관심을 보여 주라. 그리스도를 죄를 용서해 주시는 구주로 제시하라. 이웃 사람들을 그대의 가정으로 초청하여, 귀중한 성경과 성경 진리를 설명하는 책들을 읽어 주라. 그것이 단순한 찬미의 노래와 열렬한 기도와 합해 지면, 그들의 마음을 감화시킬 것이다. 이 일을 하도록 교인들 스스로가 훈련되게 하라. 이것은 외방 나라에서 어두움 속에 헤매는 영혼들을 구원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필수적이다. 어떤 사람들은 원방에 있는 영혼들에 대하여 무거운 부담을 느끼는 한편, 본국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저들 주변에 있는 귀중한 영혼들에 대하여 무거운 부담을 느끼고, 마치 자기들의 구원을 위하여 부지런히 일하는 것처럼 그 영혼들을 위하여 일해야 한다. WM 190.1
육체도 영혼도 새롭게 못하는 유흥으로 소모되는 시간들을 가난한 자들, 병자들, 고통당하는 자들을 방문하는 일에, 혹은 도움이 필요한 어떤 사람들을 도와 주기 위하여 노력하는 일에 쓰여져야 한다. WM 190.2
가난한 자, 멸시받는 자, 버림받은 자들을 돕기 위하여 노력할 때, 그대의 위신과 우월감이라는 죽마 (竹馬) 를 타고 그들을 위하여 일하지 말라. 이런 방법으로 그대는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할 것이다. 진정으로 회개한 자가 되라. 그리고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그분을 배우라. 우리는 언제나 주님을 우리 앞에 모셔야 한다.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그 사실을 잊지 않도록 “나는 값으로 산 바되었다” 고 계속 말하라. WM 190.3
하나님께서는 그대의 자선심만을 요구하시지 않으시고, 그대의 명랑한 얼굴과, 그대의 희망찬 말과, 그대의 악수도 요구하신다. 고통당하는 주님의 자녀들을 방문할 때 그대는 희망이 사라진 자들을 만날 것이다. 그들에게 햇빛을 도로 가져다 주라. 생명의 떡이 필요되는 자들이 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주라. 또 지상의 어떤 유향으로나 의사로도 고칠 수 없는 심령의 병에 걸려 있는 자들이 있다.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그들을 예수님께로 데려오라. WM 191.1
특별한 경우에 어떤 이들은 충동적인 행동을 유발하는 감상적인 기분에 빠진다. 그들은 이러한 방법으로 그들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위대한 봉사를 하고 있는 줄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의 영성은 미구에 죽어 버리고, 그리스도의 봉사는 등한시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적합한 봉사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동료 인간들에게 유익을 끼칠 수 있는 것은 정에 끌리기 쉬운 발작적인 행동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을 행하려는 발작적인 노력은 이따금 유익보다 손상을 끼치는 결과를 초래한다. — 교회증언 6권 276, 277 WM 191.2
올바른 방법으로 도와 주라 — 궁핍한 자들을 도와 주는 방법들은 주의 깊고도 경건한 마음으로 연구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분은 당신께서 만드신 피조물들을 돌보는 방법을 근시안적인 인간보다 더 잘 아시기 때문이다. 도와달라고 간청하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분별하지 않고 도와 주는 자들이 있다. 이 점에서 그들은 잘못한다. 궁핍한 자들을 도와 주고자 노력할 때, 우리는 올바른 방법으로 도와 주도록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도움을 받을 때 그들 스스로를 계속해서 특별한 도움의 대상이 되게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의지할 수 있는 어떤 것을 보기만 하면 의지하려 할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부적당한 시기에 적합하지 않는 관심을 기울이므로 우리는 나태와 무능과 낭비와 부절제를 장려할 수도 있다. WM 191.3
우리가 가난한 자들에게 줄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는 낭비를 장려하고 있는가? 나는 그들을 도와 주고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그들을 해하고 있는가?” 자기 스스로 생계를 꾸려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할 권리가 없다. WM 191.4
“세상이 나에게 살아가게 해 줄 의무가 있다” 는 말은 거짓과 기만과 절도의 요소를 간직하고 있다. 세상은 스스로 일하고 벌어서 생계할 수 있는 어떤 사람에게도 생계를 유지시켜 줄 의무가 없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우리의 문간에 와서 먹을 것을 구걸하면, 우리는 그를 주린 채로 돌려 보내지 말아야 한다. 그의 궁핍은 불행의 결과일 수도 있다. WM 192.1
우리는 부양해야 할 대가족을 거느리고 허약과 궁핍으로 더불어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자들을 도와 주어야 한다. 아버지 없는 아이들을 거느린 많은 과부 어머니는 그에게 딸린 어린것들을 부양하고 음식과 의복을 그들에게 공급해 주기 위하여, 힘에 지나치도록 일을 하고 있다. 그러한 많은 어머니들은 지나친 노력 때문에 죽었다. 모든 과부들은 소망에 넘치는 위로와 격려의 말이 필요하다. 그리고 실질적 도움을 받아야 할 자들이 대단히 많다. — 교회증언 6권 227, 228 WM 192.2
필요한 모든 경우를 기록해 두라 — 부자와 가난한 자가 동정과 도움의 줄로 굳게 묶이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다. 그분은 우리에게 알려지는 고통과 궁핍에 대한 모든 사정에 관심을 나타내도록 요구하신다. 고통당하는 인간에게 봉사하는 것이 그대의 위엄을 떨어뜨리는 일이 아님을 생각하라. … WM 192.3
우리의 믿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의 의무에 속한 바로 그 도움을 갈망하고 있다. 만일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들의 이웃 사람들에게 진정한 관심을 보였을 것 같으면, 많은 사람들이 이 시대를 위한 진리를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있는 바로 그곳에서 그들을 도와 주는 것만큼 사업에 좋은 평판을 주거나 언제나 할 수 있는 길은 없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분의 계명을 지키노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그리스도께서 일하신 것처럼 일을 했을 것 같으면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기별 안에서 기뻐하고 있을 것이다. — 교회증언 6권 279, 280 WM 192.4
오늘날 사람들의 마음과 접촉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 — 고통당하는 인류의 결핍에 관심을 보임으로 우리는 사람들의 마음과 가장 잘 접촉할 수 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 주기 위하여 우리의 특혜와 특권들을 버릴 만큼 다른 사람들에 대한 부드러운 동정을 느낄 때, 정신과 마음의 개화가 훨씬 더 쉽게 이루어진다. — 서신 116, 1897 WM 192.5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찾아 가서 그리스도를 증거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주신 사명 아래 일해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 28:19, 20). 그러므로 등한히 여김을 받는 사람들을 접촉하여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사업이다. WM 193.1
최근까지 우리 백성들이 이 사람들을 돕기 위하여 기울여 온 노력은 조금 뿐이거나 전혀 없다. 그리스도는 의인을 부르러 오시지 않고,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려 오셨다. 그분은 모든 사람이 당신의 피의 효력을 무한히 가치 있는 것, 곧 권유당하여 당신께 나오는 모든 자들을 끝까지 구원할 수 있는 가치를 지닌 것으로 여기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된 우리 인류 각 사람이 하나님은 무한하시며, 모든 인류를 위한 그리스도의 속죄에 나타난 그분의 사랑이 인간에게 주어진 가치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기억하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당신께로 와서 구원을 받으라고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우리는 모든 자비의 근원되신 분에게로 가야 한다. 그분은 사람들을 당신의 기구로 사용하셔서 그의 동료들을 죄에서 구원해 내실 것이다. — 서신 33, 1898 WM 19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