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와 왕
12장 이스르엘에서 호렙까지
바알의 선지자들을 죽임으로 북방 왕국 열 지파 가운데는 힘찬 영적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엘리야는 백성들 앞에 그들의 배도를 보여 주고 그들로 마음을 겸손히 하여 여호와께 돌아오도록 호소하였다. 하늘의 형벌은 집행되었고 백성들은 죄를 자복하고 저희 조상의 하나님을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 인정하였다. 그리하여 이제 하늘의 저주는 물러가고 현세의 생활의 축복이 다시 임하려 하였고 땅은 비로 다시 신선하게 되려고 하였다. 엘리야는 아합에게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의 소리가 있나이다”고 말하였다. 그 후에 선지자는 기도하기 위하여 산 위로 올라갔다. PK 155.1
엘리야가 그처럼 확신을 가지고 비를 맞을 준비를 하도록 아합에게 명한 것은 소나기가 내리려는 어떤 외적인 증거가 있었던 까닭이 아니었다. 선지자는 하늘에 구름도 보지 못하였고 우레 소리도 듣지 못하였다. 엘리야는 단순히 자신의 굳은 신앙에 따라 주의 성령께서 그를 감동시켜 말하게 하신 것을 말했을 뿐이었다. 그는 하루 종일 하나님의 뜻을 확고하게 수행하였고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에 대한 자신의 절대적인 믿음을 나타내었다. 그리고 이제 그의 힘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행하였으므로 그는 하늘이 미리 말한 축복을 아낌없이 주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뭄을 보내셨던 바로 그 하나님께서 의로운 행위에 대한 상급으로 비를 풍족히 내려 주실 것을 약속하셨고 이제 엘리야는 그 약속된 비가 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엘리야는 겸손한 태도로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회개한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였다. PK 155.2
엘리야는 거듭거듭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종을 보내어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눈에 보이는 증거가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였다. 그럴 때마다 종은 돌아와 “아무것도 없나이다”고 말하였다. 선지자는 조급해 하지도 아니하고 믿음을 잃지도 아니하였다. 오히려 더 열렬히 탄원하기를 계속하였다. 종은 여섯 번이나 구리처럼 굳은 하늘에는 비올 징조가 없다는 말을 가지고 돌아왔다. 불요불굴의 엘리야는 한 번 더 그를 보내었으며, 이번에는 종이 돌아와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 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고 말하였다. PK 156.1
이것으로 넉넉하였다. 엘리야는 하늘에 흑암이 모여 들기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그는 믿음으로 그 작은 구름에서 많은 비를 볼 수 있었고 그의 믿음과 일치한 행동으로 급히 종을 아합에게 보내어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라는 기별을 전하였다. PK 156.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이러한 중대한 위기에 엘리야를 사용하실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대 신앙가였기 때문이었다. 그가 기도할 때에 그의 신앙은 하늘의 약속에 닿아서 그것을 붙잡았고 그의 탄원이 응답 될 때까지 기도하기를 계속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말을 들으셨다는 충분한 증거를 기다리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가장 작은 증거에도 모든 것을 즐겨 모험하고자 했다. 따라서 그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할 수 있었던 일을, 모든 사람들도 자기가 활동하는 하나님의 사업에서 행할 수 있다. 이는 길르앗 산지 출신의 선지자에 대하여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비가 아니왔”(약 5:17)다고 기록된 까닭이다. PK 156.3
오늘날 세상에서도 이와 같은 신앙 곧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을 굳게 붙잡고 하나님께서 들으실 때까지 그 약속을 놓지 않는 신앙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신앙은 우리를 하늘과 밀접하게 연결시켜 주고 또 어둠의 권세와 싸워 이길 힘을 우리에게 가져다준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히 11:33, 34)였다. 오늘날 우리도 믿음을 통하여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높은 목표에 도달하여야 한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 PK 157.1
믿음은 응답 받는 기도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요일 5:14, 15). 우리는 야곱의 불굴의 신앙과 엘리야의 굳센 인내력을 가지고 하늘 아버지께 우리의 탄원을 드릴 수 있고 그분께서 약속하신 바를 모두 요구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보좌의 명예를 걸고 당신의 말씀을 성취하신다. PK 157.2
아합이 내려가려고 준비할 때에 갈멜산 주위에는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였다.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하여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갔다. 아합이 어둠과 눈을 뜰 수 없는 빗속을 뚫고 왕성(王城)을 향해 갈 때에 앞을 볼 수 없었다.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그 날 그 신하들 앞에서 아합으로 창피를 당하게 하고 그의 우상의 사제들을 죽인 엘리야는 여전히 아합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인정하였다. 이제 그를 존경하는 행위로서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왕의 마차 앞을 달려서 왕을 성문으로 인도하였다. PK 158.1
악한 왕에게 보여 준 하나님의 사자의 친절한 행위는 하나님의 종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자신을 존중히 여기고 높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교훈이 된다. 저들에게 천하게 보이는 의무를 수행하기에는 자기의 신분이 너무나 높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저희가 종의 일을 하고 있음이 알려질까봐 두려워서 필요되는 봉사까지도 수행하기를 주저한다. 이런 사람들은 엘리야의 모본에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그의 말을 따라 삼년 동안 하늘의 보화가 땅에서 걷힌바 되었고, 갈멜산에서 그가 드린 기도의 응답으로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물을 사르었다. 이로 인해 하나님께로부터 특별한 영광을 받았다. 그의 손으로 우상 숭배자들의 선지자들을 죽임으로 하나님의 형벌을 집행하였고, 비에 대한 그의 탄원도 응답을 받았다. 그러나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그의 공적봉사를 영예롭게 하시고 기뻐하심으로 놀라운 승리를 거둔 후에도 자원하여 신하의 봉사를 수행하였다. PK 158.2
엘리야와 아합은 이스라엘 성문 곁에서 작별하였다. 성 밖에 머무르기를 택한 선지자는 외투를 입고 맨 땅에 드러누워 잤다. 왕은 성안으로 들어가 곧 궁궐에 도착하여 그 아내에게 그날의 놀라운 사건들과 여호와께서 참 하나님이시고 엘리야가 하나님의 택하신 사자임을 이스라엘에게 밝힌 하나님의 능력의 놀라운 계시에 대하여 말하였다. 아합이 왕후에게 우상교의 선지자들을 죽인 일에 대하여 말할 때에 냉혹하고 회개할 줄 모르는 이세벨은 격분하였다. 그는 갈멜산에서 일어난 사건을 하나님의 지배하시는 섭리로 인정하기를 거절하고 여전히 반항하는 태도로 대담하게도 엘리야를 죽여야 한다고 선언하였다. PK 159.1
그 밤에 한 사자가 피곤에 지친 선지자를 깨워서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정녕 네 생명으로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 같게 하리라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는 이세벨의 말을 전달하였다. PK 159.2
그처럼 대담한 용기를 나타내고 왕과 사제들과 백성들에 대해 그처럼 완전하게 승리를 거둔 후에 엘리야는 그 후에 결코 낙담하거나 겁에 질려 두려워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처럼 많은 하나님의 사랑스러운 돌보심의 증거로 축복을 받았던 그도 연약한 인간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이 같은 암담한 때에 그는 신앙과 용기를 잃고 말았다. 당황한 그는 선잠에서 깨어 길을 떠났다. 하늘에서는 비가 쏟아지고 사방은 어두웠다. 삼년 전에 하나님께서 이세벨의 증오와 아합의 수색에서 피할 장소를 지시하여 주셨던 사실을 잊어버리고 선지자는 이제 생명을 보존하기 위하여 도망하였다.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는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였다. PK 159.3
엘리야는 그가 맡은 의무의 자리에서 도망하지 말아야 하였다. 그는 여호와의 영광을 옹호하도록 사명을 맡겨 주신 하나님께서 그를 보호하여 주시기를 호소하면서 이세벨의 위협을 직면하여야 하였다. 엘리야는 자기가 신뢰하는 여호와께서 그를 왕후의 분노에서 보호하여 주실 것을 그 사자에게 말했어야 하였다. 그가 여호와의 능력의 놀라운 출현을 목격한 지 불과 몇 시간밖에 경과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그것이 그가 이제 버린바 되지 않을 것이라는 보증이 되어야 했었다. 만일 엘리야가 그가 있던 곳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서 하나님을 그의 피난처와 힘으로 삼고 진리를 위하여 굳게 섰더라면 그는 해를 받지 않고 보호함을 받았을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이세벨에게 당신의 형벌을 내리심으로 엘리야에게 또 다른 놀라운 승리를 주셨을 것이며 왕과 백성들에게 끼친 감명으로 큰 개혁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PK 160.1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일어난 이적으로부터 많은 것을 기대하였었다. 그는 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 이후에는 이세벨이 더 이상 아합의 마음에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며 온 이스라엘 나라에는 신속한 개혁이 일어나기를 바랐다. 그는 갈멜산 꼭대기에서 음식도 먹지 못하고 하루 종일 수고했다. 그렇지만 그가 이스라엘 성문으로 아합의 마차를 인도할 때에 신체적으로 과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용기는 매우 강하였다. PK 160.2
그러나 높은 신앙과 영광스러운 성공에 흔히 뒤따라오는 그런 반작용이 엘리야에게 몰려들고 있었다. 그는 갈멜산 위에서 시작된 개혁이 중단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로 의기소침하였다. 그는 비스가산 꼭대기까지 높임을 받았으나 이제 그는 골짜기에 떨어져 있었다. 그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감을 받고 있을 때에는 가장 혹독한 신앙의 시련을 견딜 수 있었으나 그의 귀에 울리는 이세벨의 위협과 이 악한 여인의 음모를 통하여 나타나는 사단의 계속적인 영향력으로 인해 실망한 이때에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데 실패하였다. 그는 엄청나게 높임을 받았으며 그 반작용도 대단하였다. 엘리야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계속 도망하여 마침내 아무도 없는 쓸쓸한 광야에 오게 되었다. 그는 녹초가 되어서 로뎀나무 아래 쉬기 위해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죽기를 간구하였다. 엘리야는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라고 하였다. 사람들의 거처에서 멀리 떨어진 망명자는 무서운 절망으로 인해 그의 정신이 꺾여서 다시는 사람의 얼굴을 보지 않게 되기를 바랐다. 마침내 완전히 기진맥진하여 그는 잠들었다. PK 161.1
모든 사람의 경험 가운데는 통렬한 실망과 철저한 낙담의 때 곧 슬픈 운명에 처하여 하나님께서 여전히 이 세상에 태어난 당신의 자녀들을 보호하신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운 날들, 고통이 영혼을 괴롭혀 마침내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나은 것처럼 보이는 날들이 이르러 온다. 이런 때에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신앙을 잃어버리고 의심의 노예가 되고 불신의 속박에 얽매인다. 만일 우리가 이와 같은 때에 영적 통찰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섭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분별할 수 있다면 그 같은 상태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셔서 우리의 발을 영원한 산보다 더 튼튼한 기초 위에 세우려고 노력하는 천사들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새 신앙과 새 생애가 싹트게 될 것이다. PK 162.1
충실한 욥은 그의 고통과 어둠의 날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PK 162.2
“나의 난 날이 멸망하였었더라면”(욥 3:3),
“나의 분한을 달아 보며
나의 모든 재앙을 저울에 둘 수 있으면”(욥 6:2).
“하나님이 나의 구하는 것을 얻게 하시며
나의 사모하는 것 주기를 내가 원하나니
이는 곧 나를 멸하시기를 기뻐하사
그 손을 들어 나를 끊으실 것이라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
(욥 6:8~10)으리라.
“내가 내 입을 금하지 아니하고
내 마음의 아픔을 인하여 말하며
내 영혼의 괴로움을 인하여 원망하리이다”
(욥 7:11).
“내 마음에…원하오니…죽는 것이 나으리이다
내가 생명을 싫어하고
항상 살기를 원치 아니하오니
나를 놓으소서
내 날은 헛것이니이다” (욥 7:15, 16).
PK 162.3
그러나 욥은 지친 생애에도 불구하고 죽도록 허락되지 않았다. 그에게 장래의 가능성이 지적되었고 희망의 기별이 전달되었다. PK 163.1
“네가…굳게 서서 두려움이 없으리니
곧 환난을 잊을 것이라
네가 추억할지라도 물이 흘러감 같을 것이며
네 생명의 날이 대낮보다 밝으리니
어둠이 있다 할지라도 아침과 같이 될 것이요
네가 소망이 있으므로…
안전히 쉬리니
네가 누워도
두렵게 할 자가 없겠고
많은 사람이 네게 첨(諂)을 드리리라
그러나 악한 자는 눈이 어두워서
도망할 곳을 찾지 못하리니
그의 소망은 기운이 끊침이리라” (욥 11:15~20).
PK 163.2
욥은 실망과 낙담의 깊은 구덩이에서 하나님의 자비와 구원하시는 능력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높은 경지로 올라갔다. 그는 의기양양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PK 163.3
“비록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의지하리니…
그는 역시 나의 구원이 되리라”
(영문 KJV).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내가 친히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외인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욥 13:15, 16, 19:25~27).
PK 164.1
“여호와께서 폭풍 가운데로서 욥에게 말씀하”(욥 38:1)시고 당신의 종에게 당신의 능력을 나타내셨다. 욥이 그의 창조주를 언뜻 보았을 때에 자신을 미워하고 먼지와 재 가운데서 회개하였다. 그 후에 여호와께서는 그를 크게 축복하실 수 있었고 그의 만년을 그의 생애의 최고의 해들이 되게 하실 수 있으셨다. PK 164.2
희망과 용기는 하나님의 사업을 이루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이것들은 믿음의 열매이다. 낙담은 죄요 옳지 않은 행위이다. 하나님께서는 시험과 시련을 위해 필요되는 힘을 당신의 종들에게 “충분히”(히 6:17) 내려 주실 수 있으시고 내려 주시기를 원하신다. 당신의 사업에 대한 원수들의 계획이 잘 놓여지고 굳게 세워진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하나님께서는 그 중 가장 강한 것이라도 뒤집어엎으실 수 있으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의 신앙을 충분히 시험하셨다고 보실 때에 이 일을 정하신 시간에 당신의 방법으로 행하신다. PK 164.3
낙심한 자들을 위한 확실한 치료제가 있다. 그것은 신앙과 기도와 사업이다. 신앙과 활동은 자신감과 만족을 줄 것이며 그것들은 날마다 증가하게 될 것이다. 그대는 불안한 예감이나 심한 절망적인 감정에 빠지고 싶은 시험을 당해 본 일이 있는가? 가장 암담한 날, 형세가 가장 험악한 것처럼 보일 때에도 무서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라. 하나님께서는 그대의 필요를 아신다. 그분은 전능하신 분이시다. 그분의 무한하신 사랑과 동정심은 결코 지치지 아니한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약속을 성취하는 데 실패하지나 않을까 하고 염려하지 말라. 하나님은 영원한 진리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충실한 종들에게 그들의 필요를 채울 정도의 능력을 내려 주실 것이다. 사도 바울은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10)고 증언하였다. PK 164.4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시련의 때에 버리셨던가? 그렇지 않았다. 엘리야가 자신이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다고 느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의 응답으로 하늘로부터 불을 보내어 산꼭대기를 비추던 때와 똑같이 당신의 종을 사랑하셨다. 그리고 이제 잠자고 있는 엘리야를 부드러운 감촉과 상냥한 음성으로 깨우셨다. 그는 원수가 그를 발견하지나 않았나 하는 두려움으로 마치 도망하려는 것처럼 놀라 일어났다. 그러나 그를 굽어보는 동정 어린 얼굴은 원수의 얼굴이 아니라 친구의 얼굴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음식을 가진 천사를 하늘로부터 당신의 종에게 보내셨다. 그 천사는 “일어나서 먹으라”고 말하였다.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PK 166.1
엘리야는 그를 위하여 준비된 음식을 먹은 후 다시 잤다. 두 번째 그 천사가 와서 피로에 지친 엘리야를 깨워 동정어린 친절한 말로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 하였다.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식물의 힘으로 그는 “사십주 사십야”를 여행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러 그곳 한 굴속에서 피난처를 찾을 수 있었다. PK 16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