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와 선지자
14장 소돔의 멸망
그 비옥함과 아름다움에 있어서 “여호와의 동산”(창 13:10) 같았던 소돔은 요단 계곡의 도시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웠으며 평야에 세워져 있었다. 이곳에는 화려한 열대성 식물이 무성하였다. 이곳은 종려나무, 감람나무, 포도나무의 원산지로 꽃들은 일 년 내내 향기를 뿜었다. 풍부한 수확물들은 들을 옷 입히고 양떼와 가축 떼들은 주위의 산들을 덮었다. 예술과 상업은 평야의 거만한 도시를 부요하게 하는 데 공헌하였다. 동방의 보물들은 소돔의 궁궐들을 장식하였고, 사막의 대상(隊商)들은 그들의 귀중한 상품들을 소돔 시장에 내놓기 위해 가지고 왔다. 생각이나 노력을 거의 들이지 않고도 생활의 모든 필요는 충족될 수 있었으며 일 년 내내 축제가 연속되는 것처럼 보였다. PP 156.1
어느 곳에서나 지나친 부요는 사치와 교만의 원인이었다. 게으름과 부요함은 결핍으로 억압되거나 슬픔으로 괴롭힘을 당한 일이 없는 마음을 완고하게 한다. 쾌락에 대한 사랑은 재물과 여가로 말미암아 촉진되었으며 백성들은 육욕의 방종에 빠졌다. 예언자는 “네 아우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그와 그 딸들에게 교만함과 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아니하며 거만하여 가증한 일을 내 앞에서 행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보고 곧 그들을 없이 하였느니라”(겔 16:49, 50)고 말하였다. 사람들에게 부와 여가보다 더 바라는 바는 없으나, 이것은 그 평야의 도시들에 멸망을 가져온 죄를 낳게 하였다. 그들의 무익하고 게으른 생활은 자신들을 사단의 유혹의 밥이 되게 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훼손시켰으며 하나님처럼 되기보다는 악마같이 되었다. 게으름은 사람에게 닥칠 수 있는 가장 큰 저주이다. 왜냐하면 악습과 범죄가 그것에 잇따르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음을 약하게 하고 이해력을 왜곡시키며 영혼을 저하시킨다. 사단은 방심하고 있는 자들을 멸망시킬 준비를 갖추고 숨어 기다린다. 그들의 여가는 사단이 다소 매력적인 변장을 하고 교묘하게 침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사단은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갈 때 가장 큰 성공을 거둔다. PP 156.2
소돔에는 환락과 주연, 연회와 술 취함이 있었다. 가장 비열하고 가장 야수적인 정욕들이 제어되지 않았다. 백성들은 공공연히 하나님과 그분의 율법을 무시하였으며 포악한 행위를 즐겼다. 그들 앞에는 홍수 전 세상의 실례도 있었고 하나님의 진노로 그들이 멸망당한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들은 동일한 악의 길을 따랐다. PP 157.1
롯이 소돔으로 이주할 당시에는 부패가 전면적인 것은 아니었으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비 가운데서 도덕적인 암흑을 비출 빛줄기를 허락하셨다. 아브라함이 엘람 사람들로부터 포로들을 구원하였을 때, 백성들의 주의는 참된 신앙에로 이끌렸다. 아브라함은 소돔 사람들에게 낯선 사람이 아니었고, 그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은 그들 가운데 조롱거리가 되었으나 그가 크게 우세한 군대를 쳐부수고 승리를 얻은 것과 포로들과 전리품을 관대하게 양도한 일은 저들의 경이와 감탄을 자아내었다. 그의 전략과 무용(武勇)이 칭송을 받는 한편, 하나님의 능력이 그를 승리자로 만들었다는 확신을 아무도 거부할 수 없었다. 이기적인 소돔 주민과는 전혀 다른 고상하고 이기심 없는 정신은 그가 용기와 충성심으로 영광스럽게 한 그의 종교의 우수성에 대한 또 하나의 증거였다. PP 157.2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빌면서 여호와께서 그의 힘의 근원이요, 승리의 주인공임을 시인하였다.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의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창 14:19, 20). 하나님께서 당신의 섭리로써 그 백성에게 말씀하시고 계셨으나, 이전의 모든 빛이 그러했던 것처럼 마지막 빛줄기도 거절당하였다. PP 157.3
이제 소돔의 마지막 밤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이미 하나님의 심판의 구름이 이 운명 지어진 도시에 그늘을 던지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천사들이 그들을 멸망시킬 사명을 띠고 가까이 오고 있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번영과 향락을 꿈꾸고 있었다. 마지막 날도 이전에 왔다간 모든 날과 다름이 없었다. 사랑스럽고 안전한 광경 위에 저녁이 찾아왔다. 비할 수 없이 아름다운 풍경은 지는 햇빛 속에 잠기었다. 저녁 무렵의 시원함은 도시의 주민들을 불러내었으며 향락을 추구하는 무리들은 그 시간을 즐기고자 왔다 갔다 하였다. PP 157.4
황혼녘에 두 낯선 사람들이 성문 가까이 이르렀다. 그들은 언뜻 보기에 소돔에서 밤을 새러 온 여행자들처럼 보였다. 아무도 이 초라한 행인들이 하나님의 심판의 사자들이라는 것을 통찰할 수 없었으며, 들뜨고 경솔한 군중들은 이 하늘의 사자들을 취급한 일을 통하여 자신들이 바로 그 밤에 그들의 자랑스러운 도시를 멸망케 한 죄악의 절정에 도달하리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 낯선 행인들에게 친절하게 주의를 기울이고 그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청한 한 사람이 있었다. 롯은 그들의 참 신분을 알지 못하였으나, 그에게는 예절과 후대의 습관이 있었다. 그것들은 그의 종교의 일부분이었는데, 아브라함의 모본에서 배운 교훈이었다. 그가 예절의 정신을 배양하지 않았더라면 나머지 소돔 사람들과 함께 멸망당하도록 내버려졌을 것이다. 많은 가정에서 낯선 사람에게 문을 닫음으로 축복과 희망과 평화를 가져왔을 하나님의 사자를 내쫓았다. PP 158.1
아무리 사소할지라도 생애의 모든 행위는 선한 일이나 악한 일에 관련이 있다. 가장 작은 의무처럼 보이는 일에 성실하거나 태만한 그것이 인생의 가장 부요한 축복이나 가장 큰 재난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 놓을지도 모른다. 작은 일이 품성을 시험한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즐거움과 자원하는 마음으로 행하는 날마다의 꾸밈없는 극기의 행위이다. 우리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말고 남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 우리는 자신을 잊어버리고 사랑과 봉사의 정신을 품음으로써만이 우리의 생활을 복되게 할 수 있다. 하찮은 배려, 곧 작고 단순한 예절은 생애의 행복에 크게 기여하며, 이것들을 게을리 할 때는 적지 않은 불행을 초래하게 된다. PP 158.2
소돔에서 낯선 사람들이 무례한 대접을 받는 것을 보고, 롯은 그들이 들어올 때 그들을 자신의 집에서 대접함으로써 그들을 보호하는 것을 자신의 의무로 여겼다. 롯은 나그네들이 가까이 올 때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살펴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맞아 공손히 절하면서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주무시”(창 19장 참고)라고 하였다. 그들은 그의 후대를 사양하는 것처럼 “아니라 우리가 거리에서 경야하리라”고 말하였다. 그들이 이와 같이 대답한 데는 이중의 목적이 있었다. 곧 롯의 진실성을 시험하고, 또 마치 그들이 밤에 거리에서 경야하여도 안전하다고 생각한 것처럼 보이게 해서 소돔 사람들의 품성에 대해서 모르는 체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의 대답을 듣고 롯은 그들을 폭도들의 손에 맡기지 않기로 더욱 결심하였다. 그는 그들이 자신의 말을 듣고 자신을 따라 집으로 올 때까지 그의 초청에 응하도록 강권하였다. PP 158.3
그는 나그네들을 우회로를 통해서 집으로 인도함으로 성문에 있던 게으름뱅이들에게 그의 의도를 감추려고 하였으나 그들의 주저와 지체, 그리고 그의 끈질긴 권유로 인하여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목격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이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한 무법자들의 무리가 그의 집 주위에 모여들었다. 그것은 가장 비열한 정욕에 불타는 젊은이와 늙은이로 된 큰 무리였다. 나그네들은 그 도시의 성격에 관하여 질문하고 롯은 그 밤에 자기 집 문밖에 나가지 않도록 그들에게 경고할 바로 그 때, 폭도들의 야유와 조롱소리가 들리며 나그네들을 자신들에게 끌어내 줄 것을 요구하였다. PP 159.1
그들을 폭력으로 나오게 건드렸다가는 쉽사리 집을 부수고 들어올 줄을 알고, 롯은 어떻게 하든지 그들을 설득시키려고 밖으로 나갔다. 그는 그들을 달래고 자신들의 비루한 의도를 부끄럽게 여기도록 하려고 친한 이웃이란 뜻으로 “형제”란 말을 써서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치 말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말은 불에 기름을 붓는 것과 같았다. 그들의 분노는 폭풍우의 노호(怒號)처럼 되었다. 그들은 롯이 스스로 그들의 법관이 되었다고 조롱하며 그의 손님들에게 대하려 했던 것보다 그를 더 심하게 대하겠다고 위협하였다.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를 보호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그에게 달려들어 그의 몸을 갈기갈기 찢었을 것이다. 하늘의 사자들은 “손을 내밀어 롯을 집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았다. 그 후에 일어난 사건들은 그가 대접한 손님들의 신분을 드러내었다. “문밖의 무리로 무론 대소하고 그 눈을 어둡게 하니 그들이 문을 찾느라고 곤비하였더라.” 만일 그들이 완고한 마음에 자신을 내맡김으로 이중으로 눈멀지 않았더라면, 그들에게 내린 하나님의 채찍을 보고 두려워서 그 악행을 단념하였을 것이었다. 그 마지막 밤이 이전의 다른 많은 밤보다도 더 큰 죄악으로 얼룩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처럼 오랫동안 멸시당한 자비는 마침내 탄원하기를 그쳤다. 소돔의 거민들은 하나님의 관용의 한계, 곧 “하나님의 참으심과 그분의 진노 사이에 감추어진 경계선”을 넘어가 버렸다. 그분의 복수의 불길이 바야흐로 싯딤 골짜기에 붙으려고 하였다. PP 159.2
천사들은 그들의 임무의 목적을 롯에게 드러내었다. “그들에 대하여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우리로 이곳을 멸하러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 롯이 보호하려고 노력하였던 나그네들이 이제는 롯을 보호하며, 또 이 악한 도시에서 그와 함께 피할 그의 모든 가족을 구원할 것을 약속하였다. 폭도들은 피곤에 지쳐서 떠났고 롯은 그의 자녀들에게 경고하려고 나갔다. 그는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는 천사들의 말을 반복하였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롯이 농담하는 사람처럼 생각되었다. 그들은 소위 그의 미신적 공포심을 비웃었다. 그의 딸들은 그들의 남편들의 감화를 받았다. 그들은 그들이 사는 곳에서 매우 부요하였다. 그들은 위험에 대한 아무 증거도 볼 수 없었다. 모든 것은 전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그들은 막대한 재산을 소유하였으며, 아름다운 소돔이 멸망당하리라는 가능성을 믿을 수 없었다. PP 159.3
롯은 슬픔 가운데 집으로 돌아와서 그가 실패한 이야기를 하였다. 그 때 천사들은 그에게 일어나 그의 아내와 아직 출가하지 않은 두 딸을 데리고 그 도시를 떠나라고 하였다. 그러나 롯은 지체하였다. 비록 강포한 행위들을 보고 날마다 근심하였으나 그는 이 비루한 도시에서 행하여지는 저열하고 혐오스러운 죄악의 참 개념을 알지 못하였다. 그는 죄를 저지하여야 할 하나님의 심판의 긴급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였다. 그의 몇 자녀들은 소돔에 밀착되어 있었으며 아내는 그들을 두고 떠나기를 거절하였다. 그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자들을 두고 떠난다는 생각은 그에게 견딜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호화스러운 집과 한 평생의 노력으로 얻은 모든 재물을 버리고 빈털터리의 방랑자로 떠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슬픔으로 넋을 잃은 그는 떠나기 싫은 생각으로 머뭇거렸다. 하나님의 천사들이 아니었더라면 그들은 모두 소돔과 함께 멸망당했을 것이다. 하늘의 사자들은 롯과 그의 아내와 딸들의 손을 잡아 그들을 그 도시에서 이끌어 내었다. PP 160.1
여기서 천사들은 그들을 떠나 멸망시키는 일을 완수하려고 소돔으로 돌아갔다. 다른 천사, 곧 아브라함이 간청하던 그분께서 롯에게 가까이 이르셨다. 평원의 모든 도시 가운데 열 사람의 의인도 발견되지 아니하였으나 아브라함의 기도의 응답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한 사람만 멸망을 면했다.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거나 하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는 놀랍고도 격렬한 명령이 주어졌다. 이제 주저하거나 머뭇거리는 일은 치명적인 일이 될 것이다. 저주받은 도시를 망설이면서 바라보든지, 그처럼 아름다운 집을 떠나기 싫어서 한 순간이라도 머뭇거리든지 하면 그들의 생명을 지불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의 폭풍우는 이 가엾은 피난자들이 도망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PP 160.2
그러나 롯은 당황하고 두려워한 나머지, 그에게 어떤 불행이 닥쳐와 죽지나 않을까 해서 명령을 받은 대로 행할 수 없노라고 핑계하였다. 저 사악한 도시의 불신 가운데 살았으므로 그의 믿음은 희미하게 되었다. 하늘의 왕께서 그의 곁에 계셨으나, 그는 그에게 그처럼 보호와 사랑을 나타내신 하나님께서 마치 그를 보호하지 않으실 것처럼 자신의 생명을 위하여 애원하였다. 그는 자신의 뜻과 생명을 주님의 손에 의심 없이 맡기고 전적으로 하늘의 사자를 의지하여야 하였다. 그러나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그는 자신을 위하여 계획을 세우려고 하였다. “보소서 저 성은 도망하기 가깝고 작기도 하오니 나로 그 곳에 도망하게 하소서 이는 작은 성이 아니니이까 내 생명이 보존되리이다.” 여기서 말한 도시는 나중에 소알이라고 불린 벨라였다. 그 도시는 소돔에서 몇 마일 떨어진 곳이었으며 소돔처럼 부패하였고 멸망당할 운명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롯은 이 성을 보존해 주시기를 간청하며 이것은 작은 요청이라고 애원하였다. 그의 소원은 허락되었다. 주께서 그에게 확언하시기를 “내가 이 일에도 네 소원을 들었은즉 너의 말하는 성을 멸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다. 오, 과오를 범하는 당신의 피조물들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는 얼마나 큰가! PP 161.1
불의 폭풍우가 조금밖에는 더 지체되지 않을 것이므로 급히 서두르라는 엄숙한 명령이 또다시 내렸다. 그러나 피난자 중의 한 사람은 감히 운명 지어진 도시를 돌아보았으므로 그는 하나님의 심판의 기념비가 되었다. 만일 롯 자신이 주저하지 않고 천사들의 경고를 순종하여 간청이나 항의의 말 한 마디도 없이 부지런히 산으로 도망하였더라면, 그의 아내도 무사히 피난하였을 것이요, 그의 모본의 감화력은 그 여자의 운명을 결정지은 죄에서 그녀를 구원해 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머뭇거림과 지체가 그 여자로 하나님의 경고를 경시하게 하였다. 그녀의 몸은 들에 나와 있으면서도 마음은 소돔에 달라붙어 있었으므로 그것과 함께 멸망하였다. 그분의 심판으로 그녀의 재산과 자녀들이 파멸을 당하게 된 까닭에 그 여자는 하나님을 배반하였다. 비록 그녀는 사악한 도시에서 불러냄을 받음으로 그처럼 큰 은총을 입었을지라도, 여러 해 걸려 모은 재산이 잿더미가 되도록 버려두어야 했기 때문에 자신이 가혹한 취급을 받는다고 생각하였다. 감사함으로 구원을 받아들이는 대신에, 그 여자는 하나님의 경고를 거역한 자들의 생명을 동경해서 주제넘게도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 여자의 죄는 그녀가 살 가치가 없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곧 그 여자는 생명의 보호에 대하여 그다지 감사를 느끼지 않았다. PP 161.2
우리는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준비를 경시하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한다. “나의 아내와 자녀들이 나와 함께 구원을 얻지 못한다면 나는 구원 얻을 마음이 없다”라고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그들은 그렇게 사랑스러운 자들이 함께 하지 못한다면 그들에게는 하늘이, 하늘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감정을 품은 자들은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크신 선하심과 긍휼하심에 비추어, 그분과 자신들의 관계에 있어서 올바른 개념을 가지고 있는가? 그들은 그들의 창조주요 구속주를 섬김에 있어서 사랑과 명예와 충성의 가장 강한 줄로 붙들어 매어져 있음을 잊었는가? 자비의 초청은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졌다. 그런데 우리의 친구들이 구주의 애소하시는 사랑을 거절한다고 해서 우리도 구주에게서 돌아서야 할까? 영혼의 구원은 귀중하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무한한 값을 치러 놓으셨으므로, 이 큰 희생의 가치와 영혼의 가치를 옳게 평가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하기를 선택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긍휼을 멸시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그분의 공의로우신 요구를 무시하고 있다는 바로 그 사실이 우리를 분기시켜, 우리 자신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우리가 감화를 끼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을 인도하여 그분의 사랑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데 더욱 부지런하게 되어야 한다. PP 162.1
“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에 해가 돋았”다. 아침의 밝은 빛은 평야의 도시들에게 번영과 평화만을 말하는 것같이 보였다. 활발한 생활의 움직임이 거리에서 시작되었고, 사람들은 사업이나 그날의 쾌락에 여념이 없는 등 여러 면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롯의 사위들은 마음 약한 노인의 공포심과 경고를 재미있어 하고 있었다. 돌연 예기치 않게 청천벽력같이 대소동이 일어났다. 주께서 도시들과 비옥한 평야에 유황과 불을 하늘에서 비처럼 내리셨다. 궁궐과 신전, 값진 주택, 정원과 포도원, 그리고 전날 밤에 하늘의 사자들을 모욕하던 방탕하고 쾌락에 빠진 군중들-이 모든 것들이 불에 타 없어졌다. 대화재의 연기는 큰 가마의 연기처럼 올라갔다. 그리고 싯딤의 아름다운 골짜기는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확실성을 각 시대를 통하여 증거하기 위하여 황폐된 곳, 곧 다시 건축하거나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었다. PP 162.2
평원의 도시들을 삼킨 화염은 우리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경고의 빛을 비추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범죄자를 오래 참으시나, 그 반면에 사람들이 그 이상 죄의 길로 가서는 안 되는 한계선이 있다는 무섭고도 엄숙한 교훈을 배운다. 그 한계선에 이를 때에는 긍휼을 베푸는 일은 끝나고 심판하시는 일이 시작된다. PP 162.3
세상의 구주께서는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킨 죄보다 더 큰 죄가 있다고 선언하신다. 죄인들을 회개하도록 부르시는 복음의 초청을 듣고도 이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자들은 싯딤 골짜기의 주민보다 하나님 앞에 죄가 더 크다. 또한 그보다 더 큰 죄는 하나님을 알고 그 계명을 지키노라 공언하면서도 그들의 품성과 일상 생애에서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의 죄이다. 구세주의 경고에 비추어 보면 소돔의 운명은 공공연하게 죄를 범하는 자들뿐 아니라 하늘이 보내신 빛과 특권을 무시하는 모든 자들에게 대한 엄숙한 훈계이다. PP 165.1
참된 증인은 에베소 교회에게 말씀하셨다.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4, 5). 구주께서는 제멋대로 하며 고생하는 아들을 용서하는 지상의 부모의 동정심보다 더 깊은 동정심을 가지고 당신께서 제공하는 사랑과 용서에 대한 죄인의 반응을 주목하신다. 그분은 방황하는 자들을 향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말 3:7)고 부르짖으신다. 그러나 만일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이, 불쌍히 여기는 부드러운 사랑으로 그를 부르시는 음성에 유의하기를 고집스럽게 거절할 것 같으면, 마침내 그는 어둠 속에 버려질 것이다. 오랫동안 하나님의 긍휼을 멸시한 마음이 점차 죄로 굳어지면 더 이상 하나님의 은혜의 감화를 느끼지 못한다. 탄원하시는 구세주께서 마침내 그에게 “우상과 연합하였으니 버려 두라”(호 4:17)고 선언하실 그 영혼의 운명은 참으로 비참할 것이다. 심판 날에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도 세상의 죄악의 향락을 택하여 돌아선 사람들이 소돔 사람들보다 훨씬 더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PP 165.2
자비의 제의를 업신여기고 있는 그대들이여, 하늘의 책들에 기록된 그대들에게 불리한 긴 내용들을 생각해 보라. 하늘에는 민족들과 가정들과 개인들의 불신의 기록이 보존되어 있다. 기록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고, 회개하도록 초청하시며 용서를 베풀어 주실 수 있으시다. 그러나 기록책이 가득 차고, 영혼의 결정이 이루어지고, 자신의 선택으로 자신의 운명이 결정될 때가 올 것이다. 그 때에는 심판이 집행될 징조가 주어질 것이다. PP 165.3
오늘날 종교계의 형편에 경종을 울려야 할 이유가 있다. 하나님의 긍휼은 멸시를 받아왔다. 많은 무리들은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마 15:9)며 여호와의 율법은 소용없다고 말한다. 많은 교회들은 불신에 휩쓸려 있는데, 성경을 공공연히 부인하는 넓은 의미에서의 불신이 아니요 그리스도교의 의복으로 단장하고서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라는 믿음을 해치고 있는 그런 불신이다. 열렬한 헌신과 생기 있는 경건은 형식주의로 대치되었다. 그 결과로 배도와 관능주의가 성행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롯의 때와 같으리니…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눅 17:28, 30)고 선언하셨다. 날마다 지나가는 사건에 대한 매일의 기록은 인자의 말씀이 성취됨을 증거한다. 세계의 죄악은 신속히 무르익어 멸망 직전에 이르렀다. 하나님의 형벌은 곧 내릴 것이요 죄와 죄인들은 소멸당할 것이다. PP 166.1
우리의 구주께서는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눅 21:34, 35)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관심이 이 세상에 집중된 모든 사람에게 임한다.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다. PP 166.2
소돔이 멸망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롯에게 기별을 보내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거나 하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고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전에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다음과 같은 동일한 경고의 음성을 들었다.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지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창 19:17; 눅 21:20, 21). 그들은 소유물의 어느 것이라도 지키려고 머무르지 말고, 기회를 놓치지 않고 도망하여야 하였다. PP 166.3
부도덕한 사람들에게서 결정적으로 분리하여 생명을 얻을 수 있는 한 탈출구가 있었다. 노아의 날에도 그러하였으며 롯의 때에도 그러하였고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전에도 그러하였으며, 역시 말세에도 그러할 것이다. 당신의 백성들로 널리 퍼진 죄악에서 떠나라고 명하시는 경고의 기별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이 또다시 들린다. PP 166.4
말세에 종교계에 있는 부패와 배도의 상태는, “땅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큰 성”(계 17:18) 바벨론에 대한 계시 중에 예언자 요한에게 나타났다. 바벨론 멸망 전에 하늘로부터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 18:4)는 초청이 하늘로부터 주어진다. 노아와 롯의 시대처럼 죄와 죄인들로부터 뚜렷한 분리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과 세상은 타협할 수 없으며, 세상의 재물을 확보하기 위하여 돌아설 수는 없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PP 167.1
싯딤 골짜기의 주민들처림 사람들은 번영과 평화를 꿈꾸고 있다.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는 하나님의 천사들로부터의 경고가 있는 반면에 “안심하라, 경고를 받을 만한 까닭이 없다”라고 하는 다른 음성이 들린다. 하늘이 죄인들에게 임하려고 하는 신속한 멸망을 선포하는 동안에도 군중들은 “평안하다, 안전하다”고 부르짖는다. 저희가 멸망당한 전날 밤까지도 평야의 도시들의 주민은 향락에 도취되어 하나님의 사자의 염려와 경고를 비웃었다. 그러나 그 조롱자들은 불꽃 속에서 멸망하였고, 그날 밤에 자비의 문은 사악하고 경망스러운 소돔 주민들에게 영원히 닫혔다. 하나님께서 항상 만홀히 여김을 당하지는 않으실 것이다. “여호와의 날 곧 잔혹히 분냄과 맹렬히 노하는 날이 임하여 땅을 황무케 하며 그 중에서 죄인을 멸하리니”(사 13:9). 세상의 큰 무리가 하나님의 자비를 거절하고 신속하고 만회할 수 없는 멸망에 휩쓸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경고에 주의를 기울인 자들은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며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할 것이다. 그분의 진실함은 그들의 방패와 손 방패가 될 것이다. 그들에게는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시 91:1, 4, 16)는 약속이 있다. PP 167.2
롯은 소알에서 오래 살지 않았다. 그 곳에도 소돔에서처럼 죄악이 성행하였다. 그래서 롯은 이 도시도 멸망당하지 않을까 하고 그 곳에 머물기를 두려워하였다. 오래지 않아 소알도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대로 멸망을 당하였다. 롯은 감히 그의 가족들을 부도덕한 도시의 감화에 내맡기면서까지 갖고자 했던 것들을 다 빼앗긴 채 산으로 가서 굴속에서 살았다. 그러나 소돔의 저주는 이곳까지 그를 따라왔다. 그의 딸들의 죄스러운 행위는 그 타락한 곳에서 악한 교제를 한 결과였다. 소돔의 도덕적 부패가 그들의 품성을 형성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선악을 구별할 수 없었다. 롯의 후손은 모압과 암몬 사람들뿐이었는데, 그들은 비루하고 우상을 숭배한 족속들, 곧 하나님께 대한 배반자들이었고, 그분의 백성의 쓰디쓴 원수들이었다. PP 167.3
아브라함의 생애와 롯의 생애는 얼마나 큰 대조를 이루었는가! 한때 그들은 동료가 되어 한 제단에서 예배하고 그들의 순례의 장막에서 나란히 거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얼마나 멀리 떨어졌는가! 롯은 향락과 이익을 위하여 소돔을 선택하였다. 아브라함의 제단과, 이 제단에서 날마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을 떠나서 그는 그의 자녀들이 부패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백성들과 섞이는 것을 허락하였다. 그러나 그는 심중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는 성경 가운데 “의로운” 사람이었다는 선언을 받았다. 그의 의로운 영혼은 날마다 그의 귀에 들리는 비루한 대화와 그가 막을 수 없는 강포와 범죄로 인하여 번민하였다. 그는 마침내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슥 3:2)처럼 구원은 받았으나 재산은 없어지고 아내와 자녀들을 잃고 야수처럼 동굴에 살았으며, 노령에는 불명예스러운 일을 행하여 의로운 족속이 아니라 그들의 죄악의 잔이 차서 멸망할 운명에 처하게 될 때까지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그분의 백성과 전쟁을 한, 두 무리의 우상숭배하는 족속을 세상에 남겨 놓았다. 현명하지 못한 발걸음 하나를 따른 결과는 얼마나 무서웠는가! PP 168.1
현인은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잠 23:4)라고 말한다. “이를 탐하는 자는 자기 집을 해롭게 하나 뇌물을 싫어하는 자는 사느니라”(잠 15:27). 그리고 사도 바울은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딤전 6:9)고 선언한다. PP 168.2
롯이 소돔에 들어갔을 때 그는 자신을 온전히 죄악에 물들지 않게 하고 가족들을 명하여 자신을 따르게 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크게 실패하였다. 주위의 부패시키는 감화는 그 자신의 믿음에 영향을 끼쳤으며 그의 자녀들이 소돔의 주민들과 결합하였기 때문에 그의 관심도 어느 정도 그들의 관심사와 결부되었다. 그 결과는 우리 앞에 놓여 있다. PP 168.3
지금도 같은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많다. 집을 선택함에 있어서, 그들은 그들 자신과 그들의 가족들을 둘러쌀 도덕적·사회적 감화보다도, 그들이 얻을 현세적 이익을 더 바라본다. 그들은 아름답고 비옥한 지방을 선택하거나 보다 더 큰 번영을 바라므로 번창하는 어떤 도시로 이사한다. 그러나 그들의 자녀들은 시험에 둘러싸이게 되어, 흔히는 경건을 계발하고 의로운 품성을 형성하기에 불리한 교제를 이룬다. 방종한 도덕, 불신, 종교적 사물에 무관심한 분위기는 부모들의 감화를 깨뜨리는 경향이 있다. 하나님과 부모의 권위에 반항하는 실례들이 언제나 젊은이들 앞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방인과 불신자들에게 애착을 가지며 하나님의 원수들과 운명을 같이 한다. PP 168.4
집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우리 가족들을 둘러쌀 도덕적·종교적 감화를 제일 먼저 고려하도록 요청하신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원하는 환경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몹시 견디기 어려운 입장에 놓일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은혜를 의지하여 깨어 기도하면, 우리가 의무를 다하도록 부름을 받을 때는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패되지 않은 채 서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불필요하게 그리스도인 품성 형성에 이롭지 못한 감화 아래 우리 자신을 노출시키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자원해서 우리 자신을 세속적·불신적 환경 아래 둘 때, 우리는 하나님을 노엽게 하여 우리 가정에서 거룩한 천사들을 쫓아내게 된다. PP 169.1
그들의 영원한 관심사를 희생하면서 그들의 자녀들을 위하여 세속적 부와 명예를 얻는 사람들은 결국 이것들이 엄청난 손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롯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자녀들은 멸망당하고 그들 자신의 영혼만이 간신히 구원받은 것을 본다. 그들의 평생 사업은 수포로 돌아가고 그들의 생애는 슬픈 실패로 끝난다. 만일 그들이 참된 지혜를 활용하였더라면 그들의 자녀들이 세속적 번영은 많이 얻지 못하였을지라도 영원한 유업을 얻을 자격은 확보하여 놓았을 것이었다. PP 169.2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유업은 이 세상에 있는 유업이 아니다. 아브라함은 지상에서 “발붙일 만큼”(행 7:5)도 땅을 얻지 못하였다. 그는 막대한 물질을 가지고 그 물질을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 사람들의 행복을 위하여 썼다. 그러나 그는 이 세상을 그의 집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주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우상 숭배자들인 그의 동족을 떠나게 하시고 가나안 땅을 영원한 유업으로 약속하셨다. 그러나 그의 아들이나 그의 아들의 아들도 그것을 얻지 못하였다. 아브라함이 그의 죽은 자를 위하여 매장지를 필요로 하였을 때 그는 그것을 가나안 사람에게서 사야 하였다. 약속의 땅에서 그의 유일한 소유는 막벨라 굴속 바위를 잘라낸 무덤뿐이었다. PP 169.3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실패하지 않았으며, 유대 백성의 가나안 점령을 통하여 마지막으로 성취된 것도 아니었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갈 3:16)이었다. 아브라함 자신도 그 유업을 나누어야 하였다.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는 오래 지체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것은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벧후 3:8) 까닭이다. 지체되는 것처럼 보이나 정한 때는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합 2:3).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게 주신 선물은 다만 가나안 땅뿐 아니라 온 지구가 포함되었다. 그래서 사도는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롬 4:13)고 한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된다는 것을 성경은 명백히 가르친다. 그리스도께 속한 모든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 곧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갈 3:29; 벧전 1:4)을 이을 자들이며 그 유업은 죄의 저주에서 해방된 이 지구이다. 왜냐하면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열국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민에게 붙인 바 되리니”,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단 7:27; 시 37:11)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PP 169.4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 불멸의 유업을 보여 주셨고 그는 이 소망으로 만족하였다.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히 11:9, 10). PP 170.1
아브라함의 후손에 대하여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히 11:13)다고 기록되어 있다. “더 나은 본향”, “곧 하늘에 있는 것”(히 11:16)을 얻으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외국인과 나그네처럼 살아야 한다. 아브라함의 자손은 아브라함이 고대한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성을 얻으려고 애쓸 것이다. PP 1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