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와 선지자
부조와 선지자
0장 서문
이 책은 성경 역사의 주제들을 다루었는데, 그 주제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여기에서 행동의 동기를 나타내고, 어떤 운동의 중요한 취지를 보이고, 성경에는 짤막하게밖에 언급되지 않은 어떤 부분들을 보다 분명히 드러내어 그 주제들에 새로운 의의를 부여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그 장면들은 새롭고 영속적 감명을 주는 생생함과 무게를 가진 이와 같은 빛으로 하나님의 품성과 목적을 더욱 충분히 드러내고 사단의 간계와 그 권세를 쓰러뜨릴 방법을 밝히고 인간의 마음의 연약함을 보이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가 사람들을 악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게 하시는가를 확실히 보이기 위하여 성경의 기록을 비추고 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의 진리를 사람들에게 계시하심에 있어서 당신께서 보여주신 목적과 조화된다. 이러한 계시들을 전달한 매개체는, 성경 말씀에 비추어 볼 때, 하나님께서 인간 자손들에게 교훈을 나누어주기 위하여 여전히 사용하시는 방법들 가운데 하나임을 알게 된다. PP 19.1
그것이 지금은 태초, 곧 거룩하고 무죄한 상태에 있던 사람이 창조주로부터 개인적으로 교훈을 받던 당시와는 같지 않을지라도, 인간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대표자인 성령을 통하여 준비하신 거룩한 교사 없이 홀로 남겨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바울이, 어떤 거룩한 “빛”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의 특권이며, 그들은 “성령에 참여한 바” 됨으로써 “비췸”을 받는다고 선언하는 말을 듣는다(히 10:32, 6:4). 요한은 또한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요일 2:20)는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떠나가려고 할 즈음에, 제자들에게 그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할 위로자와 안내자로서 성령을 보내주기로 약속하셨다(요 14:16, 26). PP 19.2
이 약속이 교회에 어떻게 성취될 것인지를 보여 주기 위하여, 사도 바울은 그의 두 편지서에서 성령의 어떤 은사는 마지막 때까지 교회를 세우고 교훈하기 위하여(고전 12장; 엡 4:8~13; 마 28:20) 주어졌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한다.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명백하고 분명한 수많은 예언들은, 마지막 날에 성령의 특별한 부어주심이 있을 것이며,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는 때에, 그 마지막 경험 동안에, 예언의 영인 “예수의 증거”를 갖게 될 것이라고 선언한다(행 2:17~20, 39; 고전 1:7; 계 12:17, 19:10). 이러한 사실들을 통해 우리는 당신의 백성들을 위한 하나님의 돌보심과 사랑의 증거를 본다. 평상시뿐만 아니라 비상시에 위로자와 교사와 인도자인 성령의 임재를 위하여, 교회는 다른 어떤 때보다도 마지막 날의 위험에 처하게 될 때, 성령의 활동 방법들을 확실히 필요로 하게 된다. PP 20.1
성경은 성령이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에 작용하여 그들의 이해력을 계발하고 그들의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여러 가지 통로를 지적한다. 이 중에 계시와 꿈이 있다. 이 방법을 통하여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자손들과 교통하시고자 하신다. 이 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당신의 약속이 있다.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이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민 12:6)리라. 이 방법을 통하여 초자연적인 지식이 발람에게 전달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브올의 아들 발람이 말하며 눈을 감았던 자가 말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말하며 지극히 높으신 자의 지식을 아는 자, 전능자의 이상을 보는 자, 엎드려서 눈을 뜬 자가 말하기를”(민 24:15, 16)이라고 한다. PP 20.2
인간을 위한 은혜의 기간 동안 성령이 교회에 나타나도록 계획하신 여호와의 계획에 관하여 성경의 증언을 연구하는 것은 크게 유익한 문제가 되었다. PP 20.3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구속의 경륜을 창안하신 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과 거룩한 천사들의 봉사를 통하여 죄가 만든 심연을 건너 여전히 사람들과 교통하실 수 있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경우에서처럼 사람들과 대면하여 말씀하셨으나 더욱 흔히는 꿈과 계시를 통하여 하셨다. 이런 교통의 실례는 모든 하늘의 섭리를 망라하고 있는 거룩한 기록의 여러 곳에 많이 있다. 아담의 칠세손 에녹은 예언의 신을 통하여 권세와 영광으로 오시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바라보고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유 14절)신다고 부르짖었다.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 1:21). 백성의 영성(靈性)이 쇠약하여질 때에 예언의 신은 역사(役事)가 때때로 거의 사라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은 교회가 경험하는 모든 큰 위기들을 밝혀 주면서 하나님의 한 섭리에서 다른 섭리에로의 변화를 입증하는 신기원(新紀元)을 이루게 하였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구별된 시기에 달하였을 때에 침례 요한의 아버지는 성령에 충만하여 예언하였다. 시몬에게는 그가 주를 보기까지 죽지 않으리라는 사실이 나타난 바 되어 예수의 부모가 예수를 성전에 데려와 할례를 받게 하려는 때에 시몬은 성령의 인도로 성전에 들어와 예수를 품에 안고 그에게 축복하는 한편 그에 관하여 예언하였다. 동일한 순간에 들어온 여선지자 안나도 예루살렘에서 구속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예수에 대하여 말하였다(눅 2:26~38). PP 21.1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의 복음 전파에 수반되어야 하는 성령의 부어주심을 선지자는 다음의 말로 발표하였다. “그후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줄 것이며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같이 변하”(욜 2:26~31)리라. PP 21.2
베드로는 오순절 날에 이 예언을 인용하여 그 때에 일어난 경이로운 광경을 설명하였다.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각 제자에게 임하고 그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다른 방언으로 말하였다. 그리고 조롱하는 자들이 저희가 새 술에 취하였다고 비난하였을 때에 베드로는 “때가 제삼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그후에 그는 사실상(먼저 인용한) 요엘에 있는 예언을 인용하고 다만 “후에” 대신에 “말세에”란 말을 사용하여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로 표현하였다. PP 22.1
그 시대에 성취되기 시작한 것은 성령을 부어 주시겠다는 예언의 일부일 뿐이었다는 것이 분명하니, 이는 그 때에는 아직 꿈꾸는 늙은이가 없었고 계시를 보고 예언하는 청년이나 처녀도 없었고 그 때에 나타났던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의 기적도 없었으며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같이 되는 일도 없었고 요엘의 예언이 성취된 후에 목격하게 될 것을 아직 보지 못한 까닭이었다. 동시에 성령의 부어 주심에 관한 이 부분의 예언은 그 한 가지의 표명으로 다 된 것이 아님이 분명하니, 예언은 그 때부터 주의 큰 날이 올 때까지의 모든 시대에 걸치는 것인 까닭이다. PP 22.2
그러나 오순절 날에는 요엘의 예언 외에도 다른 예언이 성취되었다. 더욱이 그리스도께서 친히 하신 말씀도 성취되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 제자들과의 최후의 담화에서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시리니…“저는 진리의 영이라”(요 14:16, 17).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요 14:26)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요 16:13)라.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눅 24:49)셨다. PP 22.3
오순절 날에 제자들은 이와 같이 위로부터 능력을 입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이와 같은 약속은 그 경우에 국한된, 요엘의 예언에 지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세상 끝 날까지 함께 있겠다고 보증하심으로써 동일한 약속을 다른 형태로 주셨기 때문이다(마 28:20). 마가는 어떤 의미로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주께서 그들과 함께 있을 것인지를 우리에게 말해 준다. 그는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막 16:20)고 말한다. 그리고 베드로는 오순절에 제자들이 목격한 성령의 이와 같은 작용의 영속성에 대하여 증거하였다. 회심한 유대인들이 사도들에게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말하였을 때, 베드로는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행 2:37~39)고 대답하였다. 이것은 확실히 자비가 그리스도의 용서하시는 사랑을 받아들이도록 사람들을 초청하는 한, 다가오는 모든 시대에 교회 안에서, 심지어는 특별한 현시(顯示)의 형태로 역사할 성령의 활동을 제시한다. PP 23.1
28년 후 고린도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가운데서 바울은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의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고전 12:1)라 하였으니 이 문제는 매우 중대하여 그리스도 교회가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그는 생각하였다. 비록 성령은 하나이나 그 작용은 여러 가지임을 기술한 후 그 여러 가지가 무엇임을 설명하려고 여러 가지 지체를 가진 인체의 모양을 소개하여 어떻게 교회가 같지 않은 직분과 선물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보여 주었다. 마치 인체가 여러 지체를 가지고 있으며 각 지체는 그 해야 할 특별한 임무를 띠고 하나의 조화된 통일체를 구성하려는 단일의 목적으로 모두 함께 일하는 것처럼 성령도 교회를 완전한 믿음의 몸으로 구성하기 위하여 여러 통로를 통해 일하셔야 하였다. 그후에 바울은 다음과 같은 말을 계속하였다.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하는 것이라”(고전 12:28). PP 23.2
하나님께서 몇몇을 세우셨다는 선언은 환경이 우연히 유리하게 되면 선물이 나타날 길이 열리게 된다는 그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이는 차라리 이 선물들이 교회의 참된 영적 조직의 영구적 부분이 되어야 하며 만일 이것들이 활동적 작용을 하지 아니하면 마치 인체의 상태에서 어떤 지체가 사고나 질병을 통하여 절름발이와 무력한 자가 되는 것처럼 교회도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한 번 교회에 세워진 이 선물들은 정식으로 옮겨지기까지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들이 옮겨졌다는 기록이 없다. PP 24.1
5년 후에 같은 사도는 같은 선물에 관하여 에베소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선물의 목적을 분명히 말하여 그것이 그 목적을 성취할 때까지 계속되어야 함을 간접적으로 나타내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엡 4:8, 11~13)라. PP 24.2
교회는 여기 사도 시대에서 기대한 연합의 상태에 도달하지 못하였고 그 시대 후에 바로 큰 영적 배도의 암흑이 교회를 그늘지우기 시작하였으며 이 타락의 상태 동안에는 분명히 그리스도의 충만과 신앙의 연합에 도달하지 못하였다. 그것은 또한 최후의 은혜의 기별이 모든 족속과 백성과 모든 사회 계급과 모든 그릇된 조직체에서 한 백성을 불러 모아, 그들이 인자의 오심을 위하여 기다리며 모든 복음 개혁을 완성할 때까지는 도달하지 못할 것이었다. 그리고 진정으로, 교회가 자신의 경험 가운데서 그의 위로와 인도, 격려와 보호가 되도록 임명된 모든 작용들의 유익을 필요로 하는 때가 있을 것 같으면, 그 때는 경험과 훈련을 통해 악한 일을 위하여 거의 완벽하게 준비한 악의 세력들이 최고의 기만을 행함으로 할 수만 있다면 택하신 자라도 미혹하려고 하는 마지막 날의 위험 가운데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매우 적절하게도 마지막 날에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성령을 부어주신다는 특별한 예언들 가운데 나타난다. PP 24.3
그러나 그리스도교계의 현행 인쇄물 중에는 성령의 선물이란 다만 사도 시대를 위함이고 그것은 단순히 복음을 심기 위하여 주어진 바 된 것이므로 일단 복음이 선 이상 그 선물은 그 이상 필요되지 않고 결국 교회에서 곧 사라졌다고 흔히 가르친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 시대의 그리스도인에게 경고하기를 ‘불법의 비밀’은 이미 발동하였고 그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저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나 제자들을 끌어갈 것이라고 하였다(행 20:29, 30). 그런고로 바로 이런 악에 대한 보호책으로 교회에 두신 선물들이 그 당시의 목적을 성취하고는 지나가 버렸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 이는 그 선물들의 존재와 도움은 사도 자신들이 활동하던 때보다도 그후에 있을 형편 아래 더욱 필요되는 까닭이다. PP 25.1
우리는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바울의 편지에서 선물들이 임시로 존속하는 것이라는 일반의 개념이 옳지 않다는 다른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그 기록은 바로 현재의 불안전한 상태와 마침내 그리스도인들이 도달할 영광스러운 불멸의 상태와의 차이를 바울이 대조한 것이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그는 말하기를(9, 10절)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고 하였다. 그는 더 나아가서 이 현재의 상태를 생각과 행동이 약하고 성숙하지 않은 어린아이 시절에 비교하고, 내세의 완전한 상태를 보다 분명한 견해와 성숙하고 힘있는 장년의 상태에 비교하여 설명하였다. 그리고 그는 현재 불완전한 이 상태에서 필요되는 선물들 가운데서 완전한 상태가 올 때에 우리에게 필요 없게 될 선물들을 구분하였다. 그는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 13:12)고 말하였다. 그는 영원한 상태에 적합한 미덕이 무엇임을 기술하고 거기서도 존속할 것들 곧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말하고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고 하였다. PP 25.2
이것을 고린도전서 13장 8절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로 설명하였다.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즉 하늘의 은혜인 사랑은 영원히 존속할 것이요 인간의 미래에 있을 불멸의 상태에서의 최대의 영광이다. 그러나 “예언도 폐하고” 즉 예언이 그 이상 더 필요되지 아니할 때가 올 것이며 교회를 돕는 자로서의 예언의 선물은 그 이상 쓰여지지 않을 것이다. “방언도 그치고” 즉, 방언의 선물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을 것이다. “지식도 폐하리라” 즉 관념상의 지식이 아니요 성령의 특별한 선물의 하나인 지식은 우리가 영원한 세계에서 받을 완전한 지식에 의하여 불필요하게 될 것이다. PP 26.1
그런데 만일 우리가 사도 시대에 이미 선물들이 필요되지 않은 까닭에 그쳐 버렸다는 입장을 취한다면 우리는 사도 시대는 교회가 약하고 어린아이와 같은 시대이며 모든 것이 거울 속으로 보는 것처럼 어둡게 보이는 시대였고, 사도 시대가 지나간 그후 흉악한 이리가 들어와서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교회 안에서까지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나는 시대는 완전한 빛과 지식의 시대라는 견해를 가지는 입장을 취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고로 선물들은 완전한 상태에 달하여 그 상태에 도달한 까닭에 선물들이 그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될 때에만 그치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러나 아무도 온전한 정신으로는 잠깐이라도 사도 시대가 영적 고양이라는 점에서 그 뒤를 이은 어떤 시대보다도 열등하였다는 주장을 지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그 때에 선물들이 필요하였다면, 그것들은 지금도 확실히 필요하다. PP 26.2
사도가 고린도와 에베소교회에게 보내는 편지 속에 교회에 세우신 선물로 열거한 일들 중에서 우리는 목사, 교사, 돕는 것, 다스리는 것을 발견하는데 이것은 모두 어느 면으로나 교회에서 여전히 계속되는 것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왜 다른 것들 즉 믿음과 병 고치는 것과 예언하는 것 등은 포함시키지 않았겠는가? 처음부터 동등하게 모두 세움을 입었는데 누가 선을 그어 어떤 선물들은 교회에서 제한되었다고 말할 것인가? PP 27.1
요한계시록 12장 17절에는 그 선물들이 말세에 회복되리라는 것이 예언으로 언급되었다. 이 증언을 음미하면 이 견해를 굳게 할 것이다. 이 절은 여인의 후손의 남은 자에 대하여 말한다. 여인은 교회를 상징함으로 그 자손은 어느 세대에나 교회를 구성하는 개인들이 될 것이며 그 후손의 세대, 곧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세상에 살고 있는 자들일 것이다. 이 절은 더 선언하기를 이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라 하였으니 “예수의 증거”는 요한계시록 19장 10절에 “예언의 신”(구역)이라 설명되었는데 그것은 선물들 중에 “예언의 선물”(고전 12:9, 10)이라 불린 것으로 간주하여야 한다. PP 27.2
교회 중에 선물들을 세우심은 각 개인마다 모두 그것들을 행사해야 함을 의미하지 아니한다. 이 점에 대하여 사도는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고전 12:29)고 말하였다. 함축된 대답은 모두는 아니다는 것이며 선물들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대로 사람들 중에 나누어지는 것이다(고전 12:7, 11). 오직 이 선물들은 “…교회 중에 세웠”다고 말해야 하고 만일 한 선물이 교회의 한 사람에게 주어진 바 되면 그 선물이 “교회 중에” 있다고 말하거나 교회가 이를 가졌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 세대는 예수의 증거 또는 예언의 선물을 가져야 하였고 지금 가졌다고 믿는다. PP 27.3
마지막 날에 대해 명백히 기록된 성경의 다른 부분도 동일한 사실을 분명히 보여 준다(살전 5장). 사도는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한다.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4절에서 그는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라고 첨부한다. 그러므로 그는 그 사건에 비추어 잡다한 훈계들을 하는데, 그 가운데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19~21절). “성령을 소멸치 말며 예언을 멸시치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그리고 23절에서 그는, 그와 같이 “예언”하는 일과 관련이 있었던 자들이 주께서 오시기까지 흠없이 보전되기를 기도한다. PP 28.1
이런 사유(事由)를 힘입어 우리는 예언의 선물이 말세에 교회에 나타나고 이것을 통하여 많은 빛이 전달되고, 때에 적합한 많은 교훈을 받으리라는 것을 믿는 일이 옳지 아니한가? PP 28.2
모든 일은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라는 사도의 법칙을 따라 처리해야 하고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하신 구세주의 정하신 표준으로 시험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예언의 선물이 나타난 표시가 무엇임을 주장하기 위하여 구세주의 표준에 호소하면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과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머리가 되시는 몸임을 믿는 자들의 고려에 이 책을 맡기는 바이다. PP 28.3
우라이아 스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