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보감 1

317/329

솔직한 마음으로 문제를 바라봄

신앙적 원칙의 확실성을 시험하는 어려운 입장에 처하게 될 때, 각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행동해야 마땅할까? 그는 모본이 될 만한 확고함을 가지고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 “나는 양심적인 그리스도인입니다. 나는 주일 중 일곱째 날이 성경상의 안식일임을 믿습니다. 우리의 믿음과 원칙들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는 그러한 것들입니다. 우리는 함께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만일 내가 하나님의 뜻을 보다 완전하게 알기 위해 계속 노력한다면, 나는 더욱 세상과 다르게 되면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당신이 계속 그리스도 안에서 아무런 사랑을 찾지 못하고 진리 안에서 매력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내가 결코 사랑할 수 없는 세상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나는 당신이 사랑할 수 없는 하나님의 것을 사랑하고요. 영적 사물은 영적으로 분별됩니다. 영적 분별력이 없이는 내게 대한 하나님의 요구를 볼 수도, 또 내가 섬기는 주님에 대한 나의 의무를 깨닫지도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당신은 내가 신앙적 의무 때문에 당신을 소홀하게 대한다고 느낄 것입니다. 당신은 행복할 수 없을 것이며, 하나님에 대한 나의 애정 때문에 질투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내 신앙적 신념에 홀로 처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관점이 바뀌고, 당신의 마음이 하나님의 요구에 응답하며, 당신이 나의 주님 사랑하기를 배울 때에, 비로소 우리의 관계는 새로와질 것입니다.” 1TT 575.3

이렇게 함으로써, 신자는 그의 양심이 인정하는, 그리스도를 위한 희생을 하게 된다. 이것은 그가 영생을, 모험을 하여 잃어버리기에는 너무나 값진 것으로 평가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는, 예수님보다 세상을 택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자와 평생을 통하여 관계를 맺기보다는 차라리 미혼으로 남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불신자에게 애정을 주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젊은 마음에는 결혼이 낭만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결혼이라는 것에서 상상 속에 숨겨진 이런 모습을 벗기고, 결혼 서약에 내포된 막중한 책임을 인식하도록 하는 일은 어렵다. 이 서약은 죽음의 손이 갈라 놓기 전에는 결코 무효가 될 수 없는 끈으로 두 사람의 운명을 연결시킨다. 1TT 57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