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보감 1
기도를 요청함
나의 남편과 나는 언젠가 폐결핵으로 심히 고통을 당하는 한 형제를 위하여 우리의 동정을 요청하는 한 집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는 창백하고 쇠약해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기도를 요청하였다. 그는 그의 가족이 질병에 걸려 있고 자녀를 한 명 잃었다고 말하였다. 그는 아이를 잃은 슬픔을 안고 말하였다. 그는 화잇 부부를 보기를 얼마 동안 기다려 왔다고 말했다. 만일, 그들이 그를 위하여 기도한다면 그가 나으리라고 그는 믿어 왔다. 집회가 끝난 후, 형제들은 그 경우에 우리가 유의해 주기를 요청했다. 형제들은 그의 아내가 병들었고 그의 자녀가 죽었으므로 교회가 그들을 도와 주고 있다고 말하였다. 형제들은 그의 집에서 이미 예배를 드렸으며, 그 고통당하는 가족을 위하여 기도하는 일에 연합하였다. 우리는 대단히 피곤했으며 집회를 진행하는 동안 맡은 일이 있었으므로 자리를 뜨기를 원하였다. 1TT 259.2
나는 주님의 성령께서 지시하시지 않으면 어느 누구를 위하여도 기도하지 않으리라 결심한 바가 있었다. 안식일 준수자임을 고백하는 자들 가운데서라도 불법이 너무 성하고 있다는 사실이 내게 제시되었으므로, 나는 그 과거를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에 연합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나는 그러한 사연을 이야기하였다. 형제들은 나에게, 그들이 아는 한 그는 그만한 가치가 있는 형제라고 보증하였다. 나는 병 고침을 받기 위하여 우리의 기도를 요청하는 그 형제와 몇 마디의 말을 주고 받았다. 그러나, 나의 마음에는 확신이 생기지 않았다. 그는 울음을 터뜨렸고, 우리가 오기를 기다렸다고 말하며, 만일 우리가 그를 위하여 기도한다면 그가 건강을 회복할 것을 확신한다고 말하였다. 우리는 그에게, 우리가 그의 과거의 생애를 알지 못하므로 그를 아는 자들이 기도하는 것이 낫겠다고 말하였다. 그가 우리에게 너무나 진지하게 간청하므로 우리는 그의 경우를 고려하기로 결정하였으며, 그 날 밤에 주님 앞에 그의 사정을 아뢰고 만일 명확한 길이 제시되면 그의 요청에 따르기로 하였다. 1TT 259.3
그 날 밤, 우리는 기도하는 가운데 그의 경우를 주님 앞에 아뢰었다. 우리는 그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간청하였다. 우리가 바란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 고통당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원하시는가? 우리는 주님께 그 짐을 맡기고 쉬기 위하여 돌아갔다. 꿈속에서 그 사람의 경우가 명백하게 제시되었다. 어린 시절부터의 그의 생애가 보여졌으며, 만일 우리가 주님께 간구한다면 그분이 우리를 듣지 않으실 것인데, 이는 그가 마음에 불의를 품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다음날 아침에, 그 형제는 자신을 위한 기도를 드려 달라고 우리에게 왔다. 우리는 그를 따로 데리고 가서 그의 요청을 거절할 수밖에 없음을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는 꿈 이야기를 했으며, 그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인정하였다. 그는 그의 소년 시절부터 수음를 행해 왔으며 그의 결혼 생활 중에도 그 행습을 계속하였으나 그 악습을 깨뜨리고자 노력하겠다고 말하였다. 1TT 260.1
이 사람은, 오랜 기간 동안 형성되어 온, 극복해야 할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생애의 중년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의 도덕적 원칙은 너무 연약하여 오랫동안 형성되어 온 방탕과 투쟁할 때에는 정복을 당하였다. 보다 저열한 정욕이 보다 고상한 본성을 지배하였다. 나는 그에게 건강 개혁에 대하여 물어 보았다. 그는 건강 개혁을 실행할 수 없다고 대답하였다. 그가 만일 통밀가루를 집안에 가지고 들어간다면 그의 아내는 그것을 밖에 내다버릴 것이라고 그는 말하였다. 이 가정은 교회의 도움을 받아 왔다. 그들을 위하여 기도도 드려졌다. 그들의 아이는 죽었으며 아내는 병들었고, 남편이자 아버지인 그는 그의 경우를 우리에게 의탁하여 순결하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가져감으로 하나님께서 이적을 행하사 그를 낫게 하시도록 하고자 한다. 이 사람의 도덕적 감각은 마비되었다. 1TT 260.2
청년들이, 그 정신이 부드러울 때 이 악한 습관을 시작한다면, 그들은 결코 온전히 그리고 바르게 신체적·지적·도덕적 품성을 계발시킬 힘을 얻지 못할 것이다. 여기에, 매일 자신을 저하시키면서도 감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가 악하게 낭비하였으며 만일 허락된다면 그의 정욕을 위하여 사용될 힘의 증가를 구하는 사람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오래 참으시는가! 만일, 그분이 사람을 그의 부패한 길에 따라 다루신다면, 누가 그분의 목전에서 살 것인가? 만일, 우리가 악을 행하고 있는 이 사람의 경우를 부주의하게 하나님 앞에 가지고 갔다면, 주님께서 들어주셨겠는가? 그분께서 응답하셨겠는가?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유하지 못하며 오만한 자가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시 5:4, 5; 66:18). 1TT 261.1
이것만이 유일한 경우가 아니다. 결혼 관계마저도 이 사람을 그의 청년 시절의 부패한 습관에서 보호하지 못했다. 나는 내가 제시한 그러한 경우가 드물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기를 바라지만, 그런 경우가 흔함을 안다. 부패한 정욕에 의해 지배되는 양친으로부터 태어나는 자녀들은 가치가 없다. 그 부모보다 더 저열한 위치로 타락하는 것 외에 무엇을 그러한 자녀에게서 기대하겠는가? 장래의 세대에게서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수천의 사람들이 원칙을 상실하고 있다. 바로 이들이 그들의 자녀들에게 그들 자신의 비참하고 부패한 정욕을 유전시키고 있다. 이 무슨 비참한 유산인가! 수천의 사람들이 원칙 없는 생애를 연명하며, 그들과 사귀는 자들을 오염시키고, 그들의 타락한 정욕을 자녀들에게 전함으로 그것을 영속시킨다. 그들은 자녀들에게 그들 자신의 품성의 흔적을 전한 데 대한 책임을 지게 된다. 1TT 2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