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렌 지 화잇 자서전
계속 전진함
우리는 로체스터에서 많은 번민과 절망을 무릅쓰고 계속 힘써 일하였다. 콜레라가 그 도시에 퍼졌다. 병마가 만연하는 동안, 죽은 사람을 싣고 마운트호프 공동 묘지로 가는 마차의 덜커덩거리는 소리가 밤새도록 들렸다. 이 병마는 하류 계급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사회 각계 각층의 사람들을 골고루 쓰러뜨렸다. 가장 용한 의사들도 쓰러져서 마운트호프 공동 묘지에 묻혔다. 로체스터 시내를 걸어가노라면 거의 모든 거리마다에서 우리는 칠하지 않은 송판으로 만든, 시체를 담은 관을 싣고 가는 마차를 만났다. LS 143.3
우리의 어린 에드슨이 이 병에 걸렸다. 우리는 그를 크신 의원 되시는 분에게 데려갔다. 나는 그를 양팔로 안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을 꾸짖었다. 그러자, 그는 즉시 나았다고 느꼈으므로, 한 자매가 주님께서 그를 치료해 주십사는 기도를 시작하자 이 세살된 어린이는 놀란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면서, “주님께서 벌써 나를 고쳐 주셨으니까 더이상 기도할 필요가 없어요”라고 말하였다. 그는 매우 허약했으나 병세가 더 악화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그는 원기를 회복하지 못하였다. 우리의 믿음은 아직도 더 시련을 받아야 하였다. 3일 동안 그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였다. LS 144.1
우리는 뉴욕 주 로체스터에서 메인 주 뱅골에 이르기까지 두 달간의 여행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 여행은 버몬트에 있는 형제들이 희사한 찰리라는 좋은 말과 함께 포장 마차를 타고 가게 되었다. 우리는 이렇게 위독한 상태에 있는 아이를 차마 떼어놓고 떠날 수가 없었지만 더 악화만 되지 않으면 떠나기로 결심하였다. 첫번째 집회 약속에 맞추어 가려면 우리는 2일 이내에 여행을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우리는 이 문제를 주님께 아뢰고, 만일 아이가 식욕이 생기면 그것을 증거로 받아들여 모험을 하겠다고 아뢰었다. 첫날에는 호전되는 기미가 전혀 없었다. 음식은 조금도 입에 대지 못하였다. 다음날 정오경에 그는 국물을 달라고 해서 마셨다. LS 144.2
우리는 그 오후에 여행을 시작하였다. 오후 네시경에 나는 아픈 아이를 마차에 뉘어 가지고 20마일을 갔다. 그날 밤에 아이는 매우 신경 과민 상태였다. 그는 통 잠을 자지 못했으며, 나는 거의 밤새도록 그를 안고 있었다. LS 144.3
이튿날 아침, 우리는 로체스터로 돌아갈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여행을 계속할 것인가를 함께 의논하였다. 우리를 접대한 가정의 사람들은 말하기를, 우리가 만일 여행을 계속한다면 도중에서 아이를 장사지낼 것이라고 했는데 모든 상황으로 볼 때 그럴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차마 로체스터로 돌아갈 수 없었다. 우리는 아이의 질병이 우리의 전도 여행을 방해하려는 사단의 활동이라고 믿었으므로 그에게 결코 굴복할 생각이 없었다. 나는 나의 남편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만일 뒤로 돌아간다면 아이가 꼭 죽을 것만 같아요. 우리가 앞으로 나아간다면 아이가 죽기밖에 더하겠어요! 그러므로, 주님을 신뢰하며 우리의 여행을 계속합시다.” LS 144.4
우리 앞에는 이틀 동안 가야 할 여행길이 약 160마일 남았지만 이런 극한 상황하에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역사하실 것을 믿었다. 나는 몹시 지쳐 있었으므로, 내가 마차 위에서 잠을 자다 아이를 놓쳐 땅에 떨어뜨리게 될까 무서워서 아이를 내 무릎 위에 올려놓고 띠로 내 허리에 동여맨 후 그날 먼 거리를 자면서 갔다. 아이는 소생되었으며 여행하는 동안 점점 원기를 회복하게 되어 우리가 집에 돌아올 때에는 제법 튼튼해졌다. LS 145.1
주님께서는 우리가 버몬트 주로 향하는 여행길에도 축복하셨다. 나의 남편에게는 걱정 거리와 할 일이 많았다. 각처에서 열리는 집회에서 대부분의 설교 시간을 담당하였으며, 책도 팔고 간행물의 보급을 위하여도 힘써 일하였다. 한 곳에서 집회를 마치면 다른 곳으로 길을 재촉 하였다. 점심 때가 되면, 길가에 말을 세워 말에게 먹이를 주고 우리도 점심을 먹었다. 그러고는, 나의 남편은 도시락 뚜껑 위에나 모자 위에 종이를 대고 리뷰지와 인스트럭터 지의 기사 원고를 썼다. LS 14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