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렌 지 화잇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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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해가 지난 후

C.W.어윈 교수는 1901-1909년까지 아본데일 학교 교장으로 일했으며, 1909년 대총회에 보낸 보고에서, 아본데일에서 발생하리라던 일이 이루어졌음을 증언하였다. LS 376.2

“시간이 흘러 그 사업이 발전하는 것을 지켜볼 기회를 갖게 되었을 때, 우리는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 장소를 선택하도록 인도하셨다고 매우 확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학교의 위치에 관해 말한 모든 것이 이곳에서 성취되었습니다. 모두 완전하게 말입니다.” LS 376.3

어윈 교수는 계속해서 말하였다. “화잇 여사의 권고로 인하여 형제들은 학교를 위한 그토록 광범위하고 대범한 계획을 세웠으며, 이 사업에 관여했던 지난 8년 동안 저는 단 하나의 계획도 바꿔야 할 필요성을 아직껏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업을 그 곳에 설립하는 일을 인도하셨고, 지난 8년 동안의 우리의 노력은 이미 수립된 계획을 보다 완전하게 발달시킨 것에 불과합니다. 이 같은 결과로 미루어 보아, 하나님의 지시가 진실이었음이 입증되었다고 저는 믿습니다. LS 376.4

후원자가 적고 백성들이 심한 재정적 곤란을 겪고 있는 곳에서 그런 유의 학교를 시작함으로 학교가 2만 3천 달러라는 큰 부채를 어쩔 수없이 안게 되었습니다. 이 무렵 ‘실물교훈’의 판매 계획이 착수되었고, 이 곳의 형제들은 이 사업에 관한 지시를 실행하려는 진지한 목적을 가지고 이 사업을 추진하였습니다. 학교를 위해 ‘실물교훈’을 판매한 대가로 현재까지 2만 달러가 넘는 자금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책 판매를 시작할 때 2만 3천 달러였던 부채는 ‘실물교훈’을 판매함으로 모두 갚게 되었습니다…. LS 377.1

‘실물교훈’ 판매 운동을 시작할 때, 아본데일 학교의 시가(時價)는 2만 3천 달러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1909년)의 학교 시가는 약 6만7천 달러입니다. 시가 2만 3천 달러에 학교가 받은 2만 달러를 더하면 4만 3천 달러가 됩니다. 그래서 현재 6만 7천 달러에서 이 금액을 제하면, 지난 8년 동안 학교는 2만 4천 달러의 이익을 얻었음을 알게 됩니다. 이것은 실업 학교를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음을 증명해 줍니다. LS 377.2

8년 전 이 학교에서 우리의 일을 시작할 때, 학생들은 산업 노동으로 연간 약 2천 달러를 벌었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연 2천 달러에 해당되는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업은 그날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성장하여, 1908년 9월 30일, 학생들은 작년 한 해 동안 그들의 학비로 2만 달러를 벌었다고 말하게까지 되었습니다. * … ‘실물교훈’ 사업을 시작한 이래, 우리는 일터로부터 한푼의 돈도 기증해 달라고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실업 학교는 다른 것뿐만 아니라 재정적인 면에서도 성공리에 운영될 수 있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 우리는 우리가 할 유일한 일은 그분께서 말씀하신 것이 사실임을 굳게 붙잡고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LS 377.3

그러나, 나는 재정적인 면만이 학교의 성공을 보여 주는 최상의 지표가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 당시 이 학교는 여러 지역으로 파송할 선교사들을 준비시키고 있어야 한다고들 하였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호주에는 수백만의 백성이 살고 있는 넓은 선교 지역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은 무려 6천 5백만에서 7천만 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원주민들로서, 반드시 현대 진리를 맛보아야 합니다. 불과 5년 전만해도 아본데일 학교 출신 두세 명만이 이 선교 지역들에서 일했는데, 오늘날에는 거의 30명 가량이 이 지역들에서 열성적인 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LS 378.1

1913년 대총회에서 J.E.펄튼 목사는 아본데일 학교에 관해 이렇게 보고하였다. “매년 이 기관은 일터를 위해 새 일꾼을 보내고 있습니다. 전에 이 학교의 학생이었던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국내와 국외의 선교지에서 성공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LS 37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