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렌 지 화잇 자서전
문서 전도자들을 훈련시킴
믿음으로 참고 견디는 자들에게는 특별한 도움이 주어질 것이라는 화잇 여사의 보증에 격려되어 여러 젊은이들이 인쇄물을 판매하여 자급하는 사업에 또다시 힘쓰기로 결심했지만, 그들은 잘 팔릴 만한 책들을 더욱 원활히 보급해 주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LS 285.4
J.G.매티슨 목사는, 자기가 문서 전도자들을 훈련시키고 격려하는 일에 최선의 노력을 다 기울였더니 정기 간행물과 작은 책들의 판매는 비교적 성공적이었지만 수입은 그들이 생활하기에 충분치가 못하였기 때문에, 더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몰라서 심히 번민하고 있다고 증언하였다. 그는 화잇 여사의 격려의 말씀을 듣고 다시 한 번 노력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하였다. LS 285.5
따라서 1885, 1886년 겨울 동안에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서는 문서 전도자들을 교육하고 훈련시키는 일에 특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스웨덴과 노르웨이와 덴마크에서는 양성 학교들이 개최되었다. 스톡홀름에서 열린 양성 학교는 넉 달 동안 계속되었고, 20명이 참석하였다. 낮에 여섯 시간 동안은 문서 전도를 했으며, 아침과 저녁 시간에는 강의를 받았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1886년도 서적과 소책자 판매고는 5,386 달러였으며, 정기 간행물 구독료는 3,146 달러에 달하였다. LS 286.1
수년 후에, 매티슨 목사는 바젤의 총회에서 돌아와서 곧 문서 전도사업을 위해 힘쓰는 중에, 그는 문서 전도자들이 매우 적은 수입으로 생활할 수밖에 없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에, 각자가 정확한 현금 계정수지 기록을 보관하였다가 일 주일에 한 번씩 자기의 검열을 받고 절약에 대해 조언을 받도록 설득하였다고 밝혔다. 멀지 않아 국면은 일변되었다. 문서 전도자들이 쓰기는 적게 쓰고 벌기는 더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합회의 재정에서 돈을 꾸지 않고도 생활할 만큼 충분히 벌게 되었다.* LS 286.2
중부 유럽의 문서 전도 사업은 책과 교사와 지도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서 인기 있는 책이 된 “그리스도의 생애”가 독일어와 불어로 번역되어 1887년 초에 백성들에게 배포되었다. LS 287.1
L.R.콘라디 목사가 1886년 초에 미국으로부터 와서 독일, 러시아, 스위스 등지에 있는 안식일 준수자들의 교회와 집회소들을 방문한 후에, 유럽 선교지의 가장 긴급한 필요 중의 하나는 잘 훈련받은 헌신한 문서 전도자들을 통하여 현대 진리가 수록된 서적을 백성들의 가정에 전달하는 일이라고 보고하였다. 그는 우리의 인쇄물들이 유럽의 많은 사람들에게 재림 기별을 전달하는 방편으로 활용되어야 할 것과, 선교 자금으로는 문서 전도자들에게 아주 적은 급료라도 지불할 수 없기 때문에 스칸디나비아에서 시작한 제도, 즉 문서 판매술에 관한 문서 전도자들의 교육과, 월급을 받지 않고 판매 이익금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제도를 중앙 유럽에서도 시작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였다. 그는 또한 그리스도의 사업을 위한 능력 있는 일꾼들이 되도록 우리의 젊은이들을 교육하고 훈련시킬 인물을 채용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였다. LS 287.2
콘라디 목사는 바젤을 시발점으로 여섯 혹은 아홉 명씩의 젊은이들의 그룹을 모아 성공적인 사업을 위해 훈련시키기 시작하였다. 그는 우리의 서적을 통하여 백성들이 구원의 기별을 들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였으며, 잘 훈련된 사람들에 의하여 이 서적들이 팔릴 수 있다고 화잇 여사가 말한 사실과, 매티슨 목사가 이미 이것이 사실임을 증명했으므로 자기와 자기의 젊은 동역자들도 그 길을 개척해야 한다고 언명하였다. 그들은 전할 책들에 수록된 위대한 진리에 대하여 열심이 생길 때까지 연구한 다음 교사의 격려와 지도를 받으며 나아가 성공적으로 일하였다.* LS 28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