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시대의 대쟁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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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아인의 인내와 기대

소란과 쟁투와 유혈 사태가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외국의 군대가 다시 보헤미아에 침입하였고, 국내의 내분 (內紛) 은 계속적으로 나라를 혼란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형편에서 끝까지 복음을 위하여 충성한 사람들은 지독한 박해를 당하였다. GC 118.4

그들의 옛날의 형제들이 로마교와 조약을 맺어 그 오류의 영향을 받고 있을 때, 초기의 신앙을 고수하고 있는 사람들은 “연합된 형제들”이라는 이름으로 특수한 교회를 조직하였다. 이로 인하여 그들은 각층 사람들로부터 저주를 받았다. 그러나 그들의 확고한 태도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산림과 동굴 속에서 피난처를 찾을 수밖에 없었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예배드리기 위하여 함께 모였다. GC 119.1

그들은 비밀리에 여러 나라에 사람들을 파견하여 여기저기에 진리를 아는 자가 있는 것과, 그들은 비록 소수이지만 여러 읍과 촌에 흩어져 있으면서 그들처럼 박해의 대상이 되어 있다는 것과, 또한 알프스 산 중에는 성경을 기초로 하여 세워진 교회가 있으며 그 곳에서 우상 숭배로 부패된 로마를 대항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Wylie, b.3, ch.19). 이러한 정보는 그들에게 큰 기쁨을 주었으며, 그들은 왈덴스인들과 교통하게 되었다. GC 119.2

보헤미아인들은 복음을 굳게 지키면서 박해의 어두운 밤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그들은 가장 어두운 시간에 아침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처럼 멀리 지평선 저쪽을 주목하여 보았다. “그들은 실로 어려운 시대에 살았다. …그러나 그들은 후스에게서 처음으로 듣고, 제롬에게서 다시 반복하여 들은 말, 곧 새벽이 오려면 한 백년은 지나야 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 말은 후스의 신봉자들에게 있어서 마치 애굽에 속박되어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한 요셉의 유언, 곧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사 허락하신 땅에 돌아가게 하시리라’고 한 유언과 같았다” (Wylie, b.3, ch.19). “15세기 말엽이 되자 ‘연합된 형제들’의 교회는 더디기는 하였으나 확실히 발전하였다. 그들은 고난을 면한 것은 아니었으나 비교적 평화를 누렸다. 16세기 초엽에는 보헤미아와 모라비아에 그들의 교회가 약 200곳 정도 있었다” (Ezra Hall Gillett, Life and Times of John Huss, vol.2, p.570). “그러므로 불과 검의 멸망과 분노에서 벗어난 남은 자로서 후스가 예언한 그대로 새벽을 맞이한 사람들은 상당히 많았다” (Wylie, b.3, ch.19). GC 1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