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시대의 대쟁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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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자 후스와 프라하의 대소동

진리의 빛은 보헤미아에서 독일로 전파되었다. 왜냐하면 프라하 대학의 소동으로 수백 명의 독일 학생들이 고국으로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그들 중의 많은 학생들이 후스에게서 처음으로 성경의 지식을 배웠는데, 그들은 돌아가서 각자 자기 나라의 여러 곳에 복음을 전파하였다. GC 100.2

프라하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소식이 로마에 전해지자 후스는 곧 법왕의 소환 명령을 받았다. 그 명령에 응하는 것은 자기의 몸을 죽음에 내어 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보헤미아의 왕과 왕후와 대학과 귀족과 정부의 고관들이 연합하여 후스는 프라하에 머물러 있게 하고, 대리자를 로마에 파견시켜 대답하도록 허락해 달라고 법왕에게 애소하였다. 그러나 법왕은 그 요구를 수락하는 대신에 도리어 후스에게 대하여는 심문 선고를 내리고 프라하 시를 파문 (破門) 에 처한다고 선포하였다. GC 100.3

그 당시에 있어서 이와 같은 선고는 언제나 큰 공포를 일으켰다. 거기에 따르는 의식들은 법왕을 하나님의 대표자로 존경하고, 그를 천국과 지옥의 열쇠를 가지고 영적 심판은 물론이요, 세속적 심판까지 행할 권능을 가진 자로 알고 있는 백성들을 공포에 질리게 할 수 있도록 잘 꾸며졌다. 파문의 선고를 받은 지방에는 하늘의 문이 닫혀지므로 법왕이 그것을 열기까지는 죽은 자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고 믿었다. 그리고 이처럼 두려운 재난의 증거로서 온갖 종교적 의식은 정지되고, 교회는 폐쇄되고, 결혼식은 교회당의 뜰 앞에서 거행되고, 죽은 자는 성별된 묘지에 매장되지 못하고 장례식 없이 도랑이나 벌판에 매장되었다. 로마는 사람의 상상력에 자극을 주는 이런 종류의 처사를 통하여 사람의 양심을 지배하고자 하였다. GC 101.1

프라하에는 큰 소동이 일어났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재난을 만난 것은 오로지 후스 때문이라고 그를 규탄하였다. 그리고 로마의 징벌에 신속히 넘기라고 요구하였다. 소동을 진정시키기 위하여 후스는 잠시 동안 고향으로 돌아가 있었다. 프라하에 남겨 놓고 온 친구들에게 그는 다음과 같이 편지를 보냈다. “내가 그대들을 떠나온 것은 나쁜 마음을 품은 자들에게 영원한 죄의 선고를 자취하지 않도록 하고, 경건한 사람들에게는 고난과 박해가 이르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예수님의 교훈과 모본을 따라서 행한 것뿐이다. 그리고 나는 경건치 않은 신부들이 그대들 가운데서 더 오랫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하여 금지할지도 모른다고 염려한 나머지 잠시 동안 물러나온 것뿐이다. 나는 거룩한 진리를 거절하므로 그대들을 떠나온 것이 아니다. 나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진리를 위하여서는 죽음도 사양치 아니한다” (Bonnechose, The Refor-mers Before the Reformation, vol.1, p.87). 그러나 후스는 자기의 활동을 그치지 아니하고 각지로 다니며 진리를 갈급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법왕이 복음을 감추어 버리고자 취한 조치는 도리어 그것을 더 널리 전파하는 방편이 되었다. “우리는 진리를 거스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 (고후 13:8) 다. GC 101.2

“그 당시의 후스의 마음에는 일종의 번민이 있었을 것이다. 비록 교회는 위협으로 그를 억누르고자 했지만, 그는 아직까지 교회의 권위를 부인하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 로마 교회는 여전히 그리스도의 배우자요, 법왕은 하나님의 대표자요 대리자였다. 후스가 싸움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권위의 악용이었지 원칙 그 자체는 아니었다. 이 사실은 그가 가지고 있는 신념과 그의 양심의 주장 사이에 무서운 갈등을 일으켰다. 자기가 그렇다고 믿은 대로 로마교의 권위가 정당하고 그릇됨이 없는 것이라면 어찌하여 거기에 불순종해야 한다고 느껴지는가? 그는 복종하는 것이 죄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데 어찌하여 소위 흠이 없는 교회에 복종하는 것이 그런 결과를 가져오는가? 이것이 바로 그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고, 그를 언제나 번민하게 하는 의문이었다. 그가 궁리해 낼 수 있었던 가장 가능한 해답은 일찍이 구주 당시에 그랬었던 것처럼 교회의 제사장들이 악한 사람들로 바뀌어져서 그들의 합법적인 권위를 불법적인 목적을 위하여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해답은 후스로 하여금, 깨달음을 통하여 전달된 성경의 교훈들이 양심을 지배해야 한다는 좌우명을 자신의 지도를 위한 지침으로 채택하고 다른 이들도 그들의 지침으로 삼도록 가르치도록 이끌었다. 즉 그릇됨이 없는 지도자는 신부를 통하여 말하는 교회가 아니고,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이었다” (Wylie, b.3, ch.2). GC 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