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시대의 대쟁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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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메소디스트들의 고투

초창기의 메소디스트 교인들은 전도자들과 일반 신도들을 막론하고 국교인들과 혹은 국교인들의 무고로 말미암아 격분한 불신자들로부터 조롱과 박해를 받고 그것을 견디었다. 그들은 법정에도 이끌려 나갔는데, 당시의 법정은 유명무실하여 정당한 재판이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박해자들의 폭행으로 자주 고통을 당하였다. 폭도들은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기구와 물품들을 파괴하고 그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약탈하였고, 남녀들과 어린이들을 잔인하게 취급하였다. 어떤 경우에는 메소디스트들의 집을 파괴하고 약탈하려는 자는 어느 때 어느 곳으로 모이라는 광고를 공공연하게 써 붙이기도 하였다. 이처럼 공공연하게 국가의 법률과 하나님의 율법을 위반하여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아니하였다. 메소디스트들은 죄인들을 멸망의 길에서 성결의 길로 돌이키고자 힘을 썼기 때문에 이처럼 철저한 박해를 받았다. GC 259.2

존 웨슬리는 자기와 자기의 동료들을 비난하는 데 대하여 말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이 사람들이 가르치는 교리가 허위요, 오류요, 광신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그것들이 지금까지 들어 보지 못한 새로운 교리이며, 퀘이커주의요 광신이며 법왕교라고 한다. 그 모든 구실들은 이미 그 뿌리까지 모두 뽑힌 것이다. 이 교리의 모든 부분은 우리 자신들의 교회가 해석하는 성경의 분명한 교리이다. 그러므로 만일 성경이 참된 것이라면 그 교리가 허위나 오류일 수는 없다. 또 다른 이들은 ‘그들의 교리가 너무 엄격하여 하늘로 가는 길을 지나치게 좁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근본적인 반대 이론이며 (오랫동안 이 문제로 공격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은연중에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 많은 반대 이론의 기초가 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우리 주님과 그분의 사도들이 만든 이상으로 하늘가는 길을 좁게 만들었는가? 과연 그들의 교리가 성경의 가르침보다도 더욱 엄격한가? 몇 구절의 명백한 성경절들을 생각해 보자. ‘네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사람이 무슨 망령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로 인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였다. GC 259.3

만일 그들의 교리가 이보다 더욱 엄격할 것 같으면, 그들은 책망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대들은 그대들의 양심에 비추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것이다. 또한 누가 능히 하나님의 말씀을 더럽히지 않고 그 엄격함을 조금이라도 늦추어 놓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오묘한 진리를 맡은 어떤 청지기라도 그 거룩한 위탁물의 어떤 부분을 변경할 것 같으면 그를 충실한 청지기라고 할 수 있겠는가? 결코 그럴 수 없다. 청지기는 하나도 감할 수가 없고 약화시킬 수도 없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나는 그대들의 기호에 맞도록 성경의 표준을 낮출 수는 없다. 그대들은 반드시 그 표준에까지 올라가야 할 것이니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멸망할 것뿐이다’라고 선포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일반적으로 ‘이 사람들은 사랑이 없다’고 평가하는 참된 이유이다. 과연 그들은 사랑이 없는가? 그렇다면 어떤 점에 있어서 그러한가? 그들이 주린 사람들을 먹이지 않고 헐벗은 사람들을 입히지 않는가? ‘그것은 전혀 문제로 삼을 것이 없다. 이 점에 있어서 그들은 아무런 부족이 없다. 그러나 그들은 판단력에 있어서 너무나 냉정하다. 그들은 그들의 방법대로 하지 아니하면 아무도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John Wesley, Works, Vol.3, pp.152, 153). GC 260.1

웨슬리 시대 직전에 영국에 나타난 영적 쇠퇴는 대체로 율법 무용론의 교리가 빚어 낸 결과였다.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도덕률을 폐지하셨으므로 그리스도인들이 율법을 지킬 의무에서 벗어났고, “선을 행해야 할 책임감”에서도 해방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율법의 영원성을 인정하면서도 목사들이 사람들에게 율법을 순종하라고 권면하는 것이 무용한 일이라고 주장하였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자 택한 사람들은 저항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로 경건과 덕성을 실천하게 되고, 이와 반대로 영원히 버림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할 능력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GC 260.2

또한 다른 사람들은 “택함을 받은 자들은 은혜를 받지 못하거나 하나님의 은총을 박탈당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택함을 받은 자들이 범하는 악행은 참된 범죄가 아니며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것으로 여길 것도 아니므로 그런 사람들은 그들의 죄를 고백하거나 회개로써 그런 죄를 끊어버릴 필요도 없다” (Mclintock and Strong, Encyclopedia, art. “Antinomians”) 고 하는 매우 두려운 결론을 내렸다. 그러므로 그들은 일종의 가장 비열한 죄, 곧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큰 위반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라도” 만일 택함을 입은 자가 범한 것일 때에는 “하나님께서 죄로 간주하지 아니하신다”고 역설하였다. 왜냐하면 “택함을 입은 자는 하나님을 노엽게 하거나 율법에 금지된 것은 어떤 것이나 행할 수 없는 것이 그들의 본질적이요 뚜렷한 특징이 되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하였다. GC 261.1

이 괴상한 교리는 본질적으로 후세의 일반 교육자와 신학자의 가르침과 똑같은 것이었다. 그들은 의의 표준인 하나님의 율법이 결코 불변 (不變) 의 것이 아니라 도덕의 표준이 사회 자체의 현실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항상 변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 모든 사상은 다 사단의 정신에서 온 것이며, 그는 죄 없는 하늘의 거민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율법의 정당한 제재를 없애 버리기 위한 그의 사업을 착수하였던 것이다. GC 261.2

사람의 성격을 변경할 수 없도록 고정시켰다는 하나님의 선고에 대한 교리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사실상 하나님의 율법을 거부하게 만들었다. 웨슬리는 그와 같은 율법 무용론자들의 그릇된 의견을 단호하게 반대하고, 율법 무용론으로 이끌어가는 교리는 성경과 배치된 것임을 증명하였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 (딛 2:11; 딤전 2:3~6).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성령은 값없이 주어졌다. “참 빛”, 곧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 (요 1:9) 신다. 그러므로 사람이 구원을 얻지 못하는 것은 생명의 선물을 스스로 거부하기 때문이다. GC 2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