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보내는 권면
남들이 아는 엘렌G.화잇
화잇 부인이 주의 사자로서 비범한 경험을 가진 것을 알고 어떤 이는 이렇게 물었다. 그의 사람됨은 어떠하였는가? 그는 우리가 가지는 바와 같은 문제를 가졌던 사람인가? 그는 부자였는가 혹은 가난하였는가? 그는 항상 미소하고 있었는가? CCh 19.6
화잇 부인은 사려 깊은 어머니였다. 그는 알뜰한 가정 주부였다. 그는 가끔 신자들을 자기 집에 환대하는 친절한 안주인이었다. 그는 유용한 이웃이었다. 그는 확신의 여인이었고, 명랑한 성격의 소유자요, 태도와 음성이 부드러웠다. 그의 경험 가운데는 침울하거나 웃음과 기쁨이 없는 신앙이 자리를 차지한 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가 옆에 있으면 마음에 온전한 안전감을 느꼈다. 아마 화잇 부인을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가 매일의 일기를 처음으로 기록한 1859년에 그의 가정을 방문하는 것일 것이다. CCh 19.7
우리는 화잇 가족이 배틀크릭의 변두리에서 살았던 것을 알게 된다. 작은 농가였으나 대지가 넓어서 정원이 있었으며 몇 개의 과실 나무와 한 마리의 소와 몇 마리의 닭 그리고 아이들이 일하고 놀 수 있는 마당이 있었다. 이 때에 화잇 부인은 서른한 살이었고 화잇 장로는 서른여섯 살이었다. 그 당시에 는 가정에 세 아이가 있었고 그 연령은 각각 넷, 아홉, 열둘이었다. CCh 20.1
우리는 또 가정에 선량한 그리스도인 소녀를 고용하여 집안 일을 돕게 한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 까닭은 화잇 부인이 종종 집에서 나가 있어서 설교와 저작에 분망한 때가 잦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화잇 부인이 요리, 청소, 빨래 그리고 바느질 등 가정의 책임을 수행하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출판소에 가서 조용한 곳에서 글을 쓸 때도 여러 날 있었다. 또 다른 날들에는 그가 정원에서 꽃과 채소를 심고 종종 이웃 사람과 꽃을 교환한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자기 가족을 위하여 될 수 있는 한 가정을 명랑하게 만들어 보려고 결심하여 아이들로 가정을 가장 있을 만한 곳이라고 생각하도록 하였다. CCh 20.2
화잇 부인은 알뜰한 구매자(購買者)이기도 하여서 이웃 재림신자들은 그와 함께 장보러 갈 수 있게 되면 좋아하였다. 왜냐하면 화잇 부인은 물건의 가치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매우 실무적인 여인이어서 딸들에게 많은 가치 있는 교훈들을 가르쳤던 것이다. 그는 잘못 만들어진 물건은 질이 좋은 상품보다 결국은 훨씬 비싸다는 것을 알았다. CCh 20.3
자녀들에게 있어서 안식일은 주일 중 가장 즐거운 날이었다. 물론 가족은 으례 교회 예배에 참석하였고 화잇 장로 부부가 설교를 맡지 아니한 경우에는 예배드리는 동안 가족이 함께 앉곤 하였다. 점심에는 다른 날에는 나오지 아니하는 특찬을 준비하였고 점심이 끝난후 날씨가 명랑하면 화잇 부인은 아이들과 함께 숲이나 강변을 거닐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관찰하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들을 음미하곤 하였다. 비가 오거나 날씨가 추우면 집안의 난로 주위에 아이들을 모아 놓고 책을 읽어 주었으며 때로는 그가 여행하면서 여기 저기에서 모은 재료에서 빼내어 읽어 주기도 하였다. 이 이야기 중의 얼마는 후에 책으로 인쇄되어 다른 부모들이 저희 자녀들에게 읽어 줄 수 있도록 하였다. CCh 20.4
이 당시 화잇 부인의 건강은 그다지 양호하지 못하여 낮 동안에는 가끔 현기증을 일으켰으나 이것이 그의 가정 일은 물론 주의 사업을 계속해 하는 것을 막지는 못하였다. 수년 후인 1863년에 그는 건강과 병자의 간호에 대한 묵시를 받았다. 그는 묵시 중에서 적당한 의복을 입는 것과 먹는 식물과 적당한 운동과 휴식의 필요와 아울러 튼튼하고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신뢰함의 중요성을 보았다. CCh 20.5
음식물에 관하여 하나님에게서 받은 빛과 육식의 유해성이 육식은 건강과 원기에 요긴하다는 화잇 부인 자신의 의견을 취소하게 하였다. 그는 자기의 마음을 비치는 묵시는 빛을 받아 가족의 식사 준비를 돕는 소녀에게 곡식과 채소와 견과와 우유, 크림, 계란 등으로 만들어진 건전하고 단순한 식물만을 식탁에 놓도록 하라고 지시하였다. 거기는 많은 실과가 있었다. CCh 20.6
가족이 식탁에 왔을 때에 거기에는 훌륭하고도 건전한 식물이 많았으나 육식은 없었다. 화잇 부인은 고기는 몹시 먹고 싶어도 다른 음식에는 생각이 없었으므로 자기가 다시 돌아와서 단순한 식물을 맛있게 먹을 수 있을 때까지 식탁을 그냥 놔두기로 결정하였다. 다음 식사 때에도 같은 경험을 가졌으나 단순한 식물은 구미가 당기지 아니하였다. 그 후 다시 그들은 식탁에 왔다. 거기에는 건강과 기력과 성장에 가장 좋다고 묵시 속에서 지시를 받은 바 그 단순한 식품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습관화된 고기를 몹시 먹고 싶어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제 고기가 가장 좋은 식물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자기의 손을 배 위에 얹고 “네가 빵을 먹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고 하는 말을 자기의 배더러 말했다고 우리에게 말하여 주고 있다. CCh 21.1
그 후 오래지 아니하여 엘렌G.화잇은 단순한 식품을 즐겨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이 식사의 변화로 말미암아 그의 건강이 즉시로 양호하여져서 그의 여생은 비교적 좋은 건강 상태를 향유하였다. 이로 보아 화잇 부인도 우리 모두가 당하는 어려운 문제를 역시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모두가 마땅히 승리를 거두어야 하는 것처럼 화잇 부인도 자신의 경험에서 식욕을 극복하여 승리를 거두어야만 했다. 건강 개혁은 전세계를 통하여 수많은 재림교인의 가족에게 축복이 되어 온 것처럼 화잇 가족에게도 큰 축복을 가져다 주었다. CCh 21.2
건강 개혁에 관한 묵시를 받고 화잇 가정이 환자를 치료하는 단순한 방법을 채택한 후에 화잇 장로 부부는 이웃 사람이 앓아 누웠을 때에 종종 초청을 받아 치료하는 일을 도와 주었는데 주께서는 그들의 노력에 크게 복을 주셨다. 다른 때에는 환자가 저희 집에 운반되어 완전히 회복할 때까지 친절히 간호를 받은 적도 종종 있었다. CCh 21.3
화잇 부인은 산이나 호수나 바다에서의 소창(消暢)이나 휴양하는 시간을 즐겼다. 중년에 이르러 그가 미국 서부 지방의 우리 출판사인 태평양 출판소 근처에서 살고 있을 때에 하루를 휴식과 휴양으로 보내자는 초청을 받았다. 화잇 부인의 가정과 직원 가족은 출판소 가족과 동행하자는 요청을 받고 그 초청을 곧 수락하였다. 그의 남편은 교회 사무로 동부 지방에 출장중이었다. 그가 이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을 발견한 것은 남편에게 보낸 편지에서였다. CCh 21.4
해변에서 건전한 점심을 즐긴 후에 모든 무리가 샌프란시스코 만에 보트 놀이를 하러 갔다. 배의 선장은 교인이었으며 명랑한 오후였다. 이어서 그들은 넓은 바다로 나가기를 제의하였다. 그 경험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엘렌G.화잇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CCh 21.5
“파도가 높았으므로 우리는 아래 위로 크게 요동하였다. 나의 감정은 부풀었지마는 아무에게도 말을 건네지 아니하였다. 참으로 장쾌하였다! 물보라가 우리에게 부딪쳐 왔다. 금문교 바깥은 바람이 세었으나 나의 생애에 이렇게 즐거워한 적은 없었다!” CCh 21.6
그 다음에 그는 선장의 주시하는 눈과 그의 명령에 언제라도 순종할 자세를 갖춘 선원을 바라보고 이렇게 명상하였다. CCh 21.7
“하나님께서 당신의 손으로 바람을 잡으신다. 그가 물결을 제어하신다. 우리는 깊고 광활한 태평양 바다 위의 조그마한 점에 지나지 아니하다. 그러나 파도 위를 달리는 이 작은 보트를 보호하기 위하여 하늘의 천사들이 보냄을 받았다. 아,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여! 우리의 지식으로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구나! 그는 한눈에 가장 높은 하늘과 바다의 중심을 보시는구나!” CCh 21.8
화잇 부인은 일찍부터 명랑한 태도를 취하여 왔다. 한 번은 이렇게 질문하였다. “당신은 내가 우울해 하고 낙담하며 불평하는 일을 본 적이 있습니까? 나는 이것을 막는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결론으로 인도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품성과 봉사의 참다운 이상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 예수께 충심으로 자원해서 하는 봉사는 밝은 신앙을 가져다 줍니다. 그리스도를 가장 밀접하게 따라가는 사람들은 우울한 적이 없습니다.” CCh 21.9
또 다른 때에는 이와 같이 기록하였다. “어느 때인가는 명랑이란 그리스도인 품성의 위엄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을 품어 본 적이 있었으나 그것은 잘못이다. 하늘은 모두가 즐거운 것이다.” 그리고 그는 만일 자신이 미소한다면 미소가 자기에게로 되돌아올 것이요, 친절한 말을 한다면 친절한 말을 대신 듣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CCh 22.1
그렇지만 그가 고통을 크게 당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이와 같은 일이 한 번은 그가 오스트레일리아의 사업을 돕기 위하여 갔던 직후에 있었다. 그는 거의 일 년 동안을 몹시 앓고 심한 고통을 당하였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침상에 누워서 밤에는 두어 시간밖에 잘 수가 없었다. 이 경험에 대해서 그는 한 친구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CCh 22.2
“무기력한 상태에 빠져 있는 내 자신을 처음에 발견하였을 때에 나는 망망한 바다를 건너온 것을 깊이 뉘우쳤다. 내가 왜 미국에 머무르지 않았을까? 이런 손해를 보면서 왜 내가 이 나라에 있을까? 나는 재삼 재사 침상의 이불 속에 얼굴을 파묻고 어지간히 울었다. 그러나 나는 오래도록 이런 화사한 눈물속에 잠겨 있지 아니하였다. 나는 스스로 이렇게 질문하였다. 엘렌G.화잇아, 네가 어쩐 일이냐? 네가 오스트레일리아에 온 것은 대총회에서 네가 거기 가는 것이 가장 좋다고 판단한 바로 그 곳으로 가는 것이 네 의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 아니냐? 이것은 네가 이제까지 실천해 온 바가 아니냐? CCh 22.3
‘그렇다’고 나는 말하였다. CCh 22.4
그렇다면 왜 거의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하며 낙심하고 있느냐? 이것이 원수가 시키는 일이 아니냐? ‘그렇다고 생각한다’고 나는 말하였다. CCh 22.5
나는 얼른 눈물을 닦고 말하였다. 이제는 됐다. 나는 이제 다시는 어두운 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죽든지 살든지 나는 나를 위하여 돌아가신 그분께 내 영혼을 지켜 주시도록 의탁하겠다. CCh 22.6
그리하여 나는 주께서 만사를 형통하게 해주시리라고 믿었다. 이 어쩔 수 없는 무기력한 8개월 동안 나는 조금도 낙담하거나 의심하지 아니하였다. 나는 이제 이 일을 이 나라의 당신의 백성들의 유익과 미국에 있는 당신의 백성들과 내 자신의 유익을 위한 주의 크신 계획의 일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혹은 왜 그런지 설명할 수 없으나 그것을 믿는다. 그리고 나는 이 괴로움 가운데서 행복하다. 나는 하늘 아버지를 신뢰할 수 있다. 나는 그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다.” CCh 22.7
화잇 부인이 그의 생애의 마지막 15년 동안을 캘리포니아의 자기 집에서 사는 동안 그는 점점 연로하여 갔다. 그러나 그는 작은 농장 주위에서 일하는 것과 그의 일을 보조하여 주는 사람들의 가족들의 행복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그가 저작으로 바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가 일찍 잠자리에 들어갔을 때에는 자정이 지나면 흔히 일을 시작하곤 하였다. 날씨가 좋으면 그의 일이 허용하는 대로 촌으로 잠깐 동안 드라이브를 하는 바 그 도중에 혹 그가 지나는 집의 정원이나 현관에 서 있는 부인을 만나게 되면 거기 멈추어서 그와 더불어 이야기하곤 하였다. 때때로 그는 식량과 의복이 결핍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집에 가서 자기 가정용 비품에서 물건을 가져오곤 하였다. 그가 죽은 지 수년 후에도 그가 살던 산곡의 이웃 사람들은 그를 항상 예수의 이야기를 그렇게 친절하게 이야기하던 작은 백발의 여인으로서 기억하고 있었다. CCh 22.8
그가 죽을 당시에는 약간 넉넉한 필수품과 생애의 기본적인 안전을 가졌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를 모본으로 쳐다보도록 요청하지 아니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요,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으로서 부활하신 주의 공로에 의지하고 주께서 그에게 위탁하신 사업을 신실히 감행하는 자이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이 하여 그는 마음 속의 신념을 가지고 그리스도인 경험에 일치하는 전생애를 끝마쳤던 것이다. CCh 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