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보내는 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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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만으로는 성화의 증거가 되지 못함

기쁜 감정이나 혹은 기쁨의 결여가 그 사람이 성화되었다든가, 성화되지 아니하였다든가 하는 증거가 되지는 아니한다. 순간적으로 성화되는 것과 같은 일은 전혀 없다. 참된 성화란 생명이 부지하는 동안 꾸준히 계속하는 날마다의 사업이다. 매일의 시험과 싸우고 자신의 죄된 경향을 이기며 마음과 생활의 성결을 위하여 힘쓰는 자들은 거룩하다고 하는 거만한 주장을 하지 아니한다. 저들은 의를 사모하기를 주리고 목마른 것같이 한다. 죄가 그들에게는 몹시 죄되게 보인다. ― SL, 10. CCh 56.2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때문에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 우리는 실수하고 그분의 성령을 슬프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회개하고 뉘우치는 마음으로 그분께 나가면, 그분께서는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신다. 물론 제거해야 할 장애물들이 있다. 그릇된 감정을 품고 있었고 교만과 자만과 불평과 성급함이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를 하나님께로부터 분리시킨다. 죄를 고백해야 하고 마음 속에는 더욱 깊은 은혜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 연약함을 느끼고 용기를 잃은 자들이 하나님께 속한 강한 자들이 되고, 주님을 위하여 고귀한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높은 견지에서 일해야 한다. 그들은 이기적인 동기에서 나온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 CCh 56.3

어떤 사람들은 주님의 축복을 구하기 전에 유예의 시간을 가지고 그들이 변화한 사실을 그분께 입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 귀중한 영혼들은 지금이라도 그분의 축복을 구할 수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야 하고, 그리스도의 영께서 그들의 연약함을 도와 주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그리스도의 품성을 형성할 수 없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죄 많고 속절없고 의지할 수밖에 없는 현실 그대로 당신께 나오기를 바라신다. CCh 56.4

회개는 용서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성령의 감화를 통하여, 우리는 죄를 깨닫게 되고 용서의 필요를 느끼게 된다. 회개하는 자 외에는 아무도 용서를 받지 못한다. 그러나 마음 속에서 회개를 이루어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분은 우리의 약점과 연약함을 모두 아신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우리를 도와 주실 것이다. ― 증언보감 2권, 91, 94. CCh 56.5

때로는 흑암과 낙담이 영혼을 엄습하여 우리를 삼키려고 위협할 것이나 우리의 확신을 버려서는 안 된다. 우리는 감정적으로 수긍되거나 수긍되지 아니하거나 간에 예수께 눈을 고정시켜야 한다. 우리는 모든 부여된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그런 연후에 하나님의 허락 안에서 조용히 안식하도록 하여야 한다. CCh 56.6

때로는 우리가 무가치하다는 깊은 의식이 온 심령에 공포의 전율(戰慄)을 일으키기도 할 것이나 이것이 우리에게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변하였다거나 혹은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변심을 하였다든가 하는 증거는 되지 못한다. 마음에 어떤 강렬한 정서를 일으키고자 노력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어제 우리가 느꼈던 바와 같은 그런 평화와 기쁨을 오늘에 느끼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손을 붙잡고 흑암 가운데서도 마치 빛 가운데서와 같이 온전히 주를 신뢰하여야 한다. CCh 57.1

이기는 자들에게 씌워지는 면류관을 믿음으로 바라보라. 구원받은 자들의 훌륭하시도다. 훌륭하시도다. 죽임을 당하셔서 우리를 하나님께 속량하신 어린 양이여! 라고 부르는 희열의 노래에 귀를 기울여라. 이런 장면들을 현실화 하여 생각하도록 힘쓰라. CCh 57.2

만일 우리가 자신의 마음을 그리스도와 하늘 세계에 더 많이 두도록 허용한다면 우리는 주님을 위한 싸움에서 강력한 자극과 고무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제 곧 우리의 본향이 될 더욱 좋은 저 땅의 영광을 명상할 때에 교만과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은 그 세력을 잃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사랑스러우심 외에는 모든 세상의 매력이 거의 가치 없어 보일 것이다. CCh 57.3

바울은 최후에 로마의 감옥에 갇혀서 하늘의 광명과 공기에서 차단되고 그의 활동적인 복음사업에서 끊기우는 바 되었으며 바야흐로 사형 선고를 받는 형편에 있었지만 그는 의심과 낙담으로 꺾이지 아니하였다. 모든 후세대의 성도들과 순교자들의 마음을 격려한 그 심오한 신앙과 용기로 충만한 임종의 증언은 바로 그 음침한 감방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의 말은 우리가 이 페이지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성화의 결과에 대하여 적절히 묘사하고 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6-8). ― SL, 89-96. CCh 5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