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행함
이것이 칭의이다
회개한 죄인을 하나님께 가납되게 해주고 그의 칭의를 이루어 주는 것은 그리스도의 의이다. 그의 생애가 아무리 죄악적이었을지라도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믿으면, 그는 그리스도의 입혀주는 의의 흠 없는 예복을 입고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 FW 106.2
범죄와 죄악으로 거의 죽을 지경이 된 죄인도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소생함을 입는다. 그는 믿음으로 예수님께서 자기의 구주가 되시고 영원히 살아 계셔서 “그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믿는 자는 그를 위해 이루어진 속죄를 통하여 효능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닫고, 곧 그처럼 무한한 값으로 산 구원의 완성을 깨닫고 그의 영혼이 찬양과 감사로 충만해진다. 그는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며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그리스도의 의의 두루마기가 하늘의 베틀로 짜여지고 자기의 순종으로 이루어져서 그분의 이름을 믿는 믿음을 통하여 회개한 영혼에게 입혀진 것을 깨닫는다. FW 106.3
죄인이 예수님의 비길 데 없는 매력을 보게 될 때, 죄는 더 이상 그에게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만사람에 뛰어난 분, 그 전체가 사랑스런 분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는 그 방대한 계획이 존귀한 목적에 의해서만이 비견될 수 있는 복음의 능력을 개인적인 경험을 통하여 깨닫게 된다. FW 107.1
우리에게는 살아계신 구주가 있다. 그분은 요셉의 새 무덤 속에 계시지 않고 사망에서 일어나 모든 믿는 영혼을 위한 대리자와 보증인으로서 하늘로 올라가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롬 5:1). 죄인은 예수님의 공로를 통하여 의롭게 된다. 이것은 인간을 위해 지불한 몸값이 완전하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은 회개하는 죄인을 아버지께서 받아주신다는 보증이다. 이럴진대 우리가 의심하고 믿고, 믿고 의심하는 모호한 경험을 가져야 할 것인가?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께 가납되게 하시는 담보물이다. 우리는 은총을 입고 하나님 앞에 서 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어떠한 공로로 인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이신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FW 107.2
예수님께서는 지금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자 지성소에 서 계신다. 그곳에서 그분은 자기의 백성을 매 순간 나타내어 그분 자신 안에서 완성시키는 일을 중단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우리가 아버지 앞에 그렇게 제시된다는 이유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자비를 이용하여 부주의하고 무관심하고 방종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는 죄의 봉사자가 아니시다. 오직 우리가 믿음으로 그분 안에 거할 때만 그분 안에서 완전해지고 사랑하는 자녀로 그분께 가납된다. FW 107.3
우리 자신의 선한 행실로는 결코 완전함을 이룰 수 없다. 믿음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영혼은 자기 자신의 의를 포기한다. 그는 자기 자신이 불완전하고, 자신의 회개가 미흡하고, 자신의 가장 강한 믿음도 연약한데 불과하고, 자기의 가장 값진 희생도 빈약하다는 것을 깨닫고 십자가의 발 아래 겸손하게 엎드린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서 한 음성이 그에게 들려온다. 놀랍게도 그는 “그대는 그분 안에서 완전하다”라는 기별을 듣는다. 이제 그의 영혼은 편히 쉬기만 하면 된다. 더 이상 그는 자기 자신 안에서 가치있는 어떤 것을, 하나님의 호의를 얻기 위해서 공로 있는 어떤 행위를 발견하고자 애쓰지 않아도 된다. FW 10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