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행실과 간음과 이혼에 관한 권면

311/372

G.C.테니 형제 자매에게, 1897년 7월 1일

패니 Y와 W.F.C.형제 사이의 일은 멜버른 장막회(1894년 1월)에서 시작되었다. 거기서 그녀는 두 자녀가 있는 기혼 남성에게 반해 버렸다. 그녀는 자신과 C 형제 사이에 어떤 애정도 없다고 딱 잡아떼었다. 그녀는 내 텐트 앞에 서서, 그 소문들은 전혀 사실 무근이라고 단언하였다. 이 일 후 1년 동안 그녀는 내게는 아무 쓸모도 없었고, 오로지, 죽어 있는, 무거운 짐이 될 뿐이었다.… TSB 216.2

우리는 아마데일 장막회 기간 내내 패니와 W.F.C.사이의 문제를 다루었다. 나는 둘을 각기 따로 불러 그들과 말했고, 그들에게 주님께서는 그들 모두와 다투신다고 말해 주었다. 그들은 그들 사이에 어떤 특별한 애정 같은 것은 전혀 없다고 부인하였다. 나는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 집회를 잘 마치도록 나를 도우셨다. 그 집회가 마치기 직전에 패니는 내게 와서 이렇게 말했다. “오, 화잇 자매여, 저는 어머니에게 오듯이 당신께 왔습니다. 저는 진정 전심으로 C 형제를 사랑합니다. 내 마음은 크게 상심해 있습니다. 세 번이나 이 축복의 잔이 내게 제시되었다가는 낚아채져 갔습니다.” 그러더니 그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우리가 결혼하는 것이 옳다면, 그의 아내가 그로부터 이혼을 얻어내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이혼을 얻어내기까지는 몇 주일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자, 주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셨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나는 그녀와 말할 엄두를 못 내었다. 왜냐하면 나는 많은 회중들 앞에서 그 날 말해야 했기 때문이다. 프레스콧 자매가 배틀크릭에 있다면, 그녀가 그대에게 그 문제를 소상하게 말해줄 수 있을 것이다. TSB 216.3

그녀와의 관계를 끊은 이래로, 나는 그래야겠다고 생각한 그대로, 그녀와 다시 상종을 하지 않았다. 이 일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패니는 시드니에 있었고, 나에게 또 다른 고백을 써서 보냈다. 나는 내가 그녀를 다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주의 영께서 내게 임하셔서, “그녀에게 다시 기회를 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나는 패니를 만나서, 그녀를 다시 받아들이겠다고 말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이렇게 했고, 그녀는 나와 함께 몇 주간을 머물렀지만,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고향으로 가서 어머니와 함께 있어야겠다고 결정했고, 나는 그녀에게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말했다.-서신 114, 1897. TSB 2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