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 3
47 장 — 동료 인간에 대한 인간의 의무
I 형제의 가족에 관한 일을 나는 보게 되었는데, 내가 이곳에 온 이래 그 일이 내 마음 속에 너무 강한 인상을 남겼으므로 나는 그것에 관해 쓰고자 한다. I 형제여 내게 보여진 바대로는 마치 문둥병처럼 그대에게 달라붙어 있는 이기심이 그대의 가정 안에 존재하고 있다. 이 이기심이 발견되어서 정복되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흉악한 죄이기 때문이다. 한 가족으로 그대들은 스스로의 뜻과 쾌락과 편의를 너무 오랫동안 도모하여 왔으며, 따라서 다른 이들이 그대들에게 요구하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대의 생각, 계획, 노력은 그대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대는 자아를 위해서 살고 있다. 만일 계발하기만 한다면 다른 이의 유익을 위해서 사는 것이 그대의 기쁨이 되기까지 증가하고 강화되었을 사심 없는 자비를 그대는 계발시키지 않는다. 그대에게는 인생의 목표, 곧 돈 이상의 큰 가치를 지닌 것을 그대에게 안겨줄 목적이 있다고 스스로 느낀다. 그대는 인간에 대해서 좀더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 그대는 그대의 영혼을 좀더 그리스도께 밀접하게 연결시킬 것이며 그분의 성령으로 적셔져서 그 어느 것도 그분의 사랑으로부터 그대를 떨어지게 할 수 없는 굳건함으로 그분께 밀착될 것이다. 3T 521.2
그리스도는 산 포도나무이시다. 만일 그대가 그 포도나무의 가지라면 그 속에 흐르는 생명의 자양분은 그대를 살찌게 할 것이요, 그대는 메마르거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한 가족으로서, 또한 한 개인으로서 그대들은 스스로가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에 관련되어 있다고 공언한다. 그러나 그대를 성소의 저울에 달아볼 때, 부족함이 드러났다. 그대들 모두에게는 전적인 변화를 체험하는 것이 필요한데 그 후에야 비이기적이고 헌신적인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그러한 일들을 할 수 있다. 철저한 회심 외에는 그 어떤 것도 그대의 성품상의 결점에 대해서 올바른 인식을 그대에게 줄 수 없다. 그대 모두에게는 세상적 정신과 세상에 대한 사랑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사도 요한은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요일 2:15) 라고 말하였다. 그대의 이기적인 정신은 그대의 마음을 편협하고 왜소하게 하여 그대 자신의 이익에만 집착하게 한다. 그대에게는 순결하고 때묻지 않은 경건이 필요하다. 진리의 단순성은 그대로 하여금 다른 이의 불행에 대해서 동정을 느끼게 할 것이다. 그대의 동정과 사랑이 필요한 이들이 있다. 성품의 이러한 특질들을 행사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모두에게 행하도록 주신 필생의 사업 중 한 부분이다. 3T 522.1
십자가를 지고 비이기적인 동기로 타인의 유익을 위해 일하는 중에 자아 부정을 실천하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그대를 면제하지 않으실 것이다. 만일 그대가 그리스도인에게 요구되는 자아 부정을 실천하는 어려움을 선택한다면, 하나님의 은혜로 그대는 그리스도께로 영혼을 인도할 자격을 갖추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대가 결코 응하지 않았던 일에 대해서 그대에게 요구하고 계신다. 우리 주위에는 동정과 사랑에 굶주린 이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궁핍과 고통과 부족 속에 있는 이들에 대해 동정과 사랑을 자연스럽게 흘려 내보낼 그 겸비한 사랑이,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그대에게도 거의 전적으로 결여되어 있다. 인간의 얼굴 자체는 영혼의 거울로서 다른 이들에게 읽혀진 바 되며, 선악간에 현저한 감화를 끼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중 그 누구에게도 우리 형제를 감시하고 그들의 죄에 대해 회개하라고 요구하시지 않았다. 그분께서는 해야 할 사업을 우리에게 남겨 주셨으며, 그분을 두려워하는 중에 오직 그분의 영광만을 바라보고 그것을 단호하게 하라고 우리에게 요구하신다. 3T 522.2
충성되거나 그렇지 않거나 간에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다른 사람에 대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 다른 공언하는 이들의 흠을 찾아내어 그들의 행위를 정죄한다고 해서 우리의 잘못된 것 하나라도 변명이 되거나 상쇄되지 않는다. 우리는 다른 이들을 우리의 규범으로 삼거나 다른 이들이 잘못을 범한다고 해서 우리의 행위 중 그 어느 것에 대해서 변명을 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양심을 주셨다. 그분의 말씀 속에 대원칙들이 놓여져 있으며, 그것은 우리의 그리스도인적 삶과 일반적인 행실에 있어서 우리를 인도하기에 충분하다. 나의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한 가족으로서 그대들은 하나님의 율법의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 그대들은 결코 그 동료 인간에 대해 인간에게 지워져 있는 의무의 짐을 느껴 본 적이 없다. 3T 523.1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3T 523.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하라 하시니라” (눅 10:25-37). 3T 523.3
여기에 영생을 얻는 조건이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우리 구주에 의해서 명백하게 진술되었다. 다치고 약탈당한 사람은 우리의 관심과 동정과 자비의 대상자들을 대표한다. 만일 우리 눈에 띄는 가난한 자, 불행한 자, 어떠한 처지에 빠졌든지 상관없이 그러한 이들의 처지에 대해서 태만하게 행한다면, 우리는 영생에 대한 보증이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응답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동정과 자비를 베풀고 있지 않는데, 이는 그들이 우리의 혈육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대는 두번째 큰 계명을 범한 자로 드러났는데 그 위에 마지막 여섯 계명이 기초되어 있다. 한 가지라도 범한 자는 모두를 범한 자이다. 인류의 필요와 고통에 대해서 그 마음을 열지 않는 자는 십계명의 첫 네 계명 속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요구에 대해 저들의 마음을 열지 않을 것이다. 우상이 심령과 애정을 요구하고 하나님께서 존귀함을 받지 아니하시고 절대 주권을 행사하시지 않는다. 3T 524.1
그대들은 한 가족으로서 서글프게 실패하였다. 가장 엄격한 의미에서 그대들은 계명 준수자가 아니다. 그대는 어떤 면에서는 아주 엄격하지만, 더욱 중한 것, 하나님의 심판, 자비와 사랑에 대해 등한히 하였다. 세상의 관습이 그대들에게 결코 규범이 될 수 없지만 수많은 유형의 불행에 빠진 이들을 향해서 세상이 보여주고 있는 따뜻한 동정과 사랑은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공언하는 이들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한다. 그들을 시험하고, 입증하고, 하나님께서 읽고 계시는 바 그들 속에 있는 것을 계발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들 중에 던져 놓으신 이들을 향하여 많은 사람들은 무관심하게 행한다. 그분께서는 환난을 당한 자, 과부, 고아에 대해서 보여주는 모든 이기적 행동, 모든 무관심한 행동을 주목하신다. 그리고 그들의 이름을 대적하여 “범죄자, 부족한 자, 율법을 범한 자” 라고 기록하신다. 우리는 우리의 행위가 어떠했는가에 따라서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궁핍한 자 괴로움을 겪고 있는 자를 등한히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성도의 인격 속에 계신 그리스도께 대한 의무 태만이다. 3T 524.2
모든 사람의 경우가 하나님 앞에서 검토될 때. “그들이 무엇을 믿는다고 공언하는가?” 라는 질문이 발해질 것이 아니라, “그들이 무엇을 행하였는가?” 를 묻게 될 것이다. 그들은 말씀을 준행하는 자였는가? 그들은 스스로를 위해서 살았는가, 혹은 남을 축복하기 위하여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자아를 부정하면서 친절과 사랑의 행실을 통해 자선을 행하였는가? 만일 기록을 통해서 저들의 성품이 친절, 자아 부정, 자선 등으로 특징지어져 있음을 보게 된다면, 그들은 그리스도로부터 복된 확신과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잘 하였도다” (마 25:21).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마 25:34). 그리스도께서는 그대의 현저한 이기적 사랑과 또한 타인의 재난과 궁핍에 대한 그대의 무관심으로 말미암아 슬픔과 상처를 당하고 계신다. 3T 525.1
다른 이들에 대한 우리의 노력이 수없이 많이 무시되고, 명백히 상실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가 선을 행하는 일에 피곤을 느끼는 것에 대한 구실이 될 수 없다. 예수께서 당신이 보살피시는 나무로부터 과실을 발견하기 위해서 오시지만 잎사귀 외에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시는 적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는 우리의 최선의 노력의 결과에 대해서 실망할 수 있으나,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타인의 재난에 대해 무관심하게 되어 아무것도 행하지 못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메로스를 저주하라 너희가 거듭거듭 그 거민을 저주할 것은 그들이 와서 여호와를 돕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도와 용사를 치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도다” (삿 5:23). 당신의 자녀라고 공언하는 이들에 대해서 그리스도께서 실망을 당하시는 적이 얼마나 많은가! 그분께서는 당신의 사랑에 대하여 오해의 여지가 없는 증거들을 그들에게 주셨다. 그분은 당신의 가난을 통해서 우리가 부유해지도록 가난하게 되셨다. 그분은 우리가 멸망받지 아니하고 영생을 얻도록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다. 그리스도께서 많은 사람들에게 거절을 당하신다고 해서, 또한 그분께서 저들에게 나누어 주신 당신의 사랑과 무한한 축복에 대해 감사하는 자가 그토록 적다고 해서. 만일 그분이 우리의 연약함을 지기를 거절하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는 끈질기고, 고통을 감내하는 노력을 장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용기가 현재 필요되는 것이지, 느릿한 낙담과 성마른 불평이 필요되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주님을 위해서 일해야 하며, 우리의 성향과 쾌락을 연구하거나 우리 자신을 섬기고 우리 자신을 빛나게 하고자 할 것이 아니다. 그러면 우리가 원하는 즉각적인 결과를 보지 못한다고 해서 어찌하여 활동하지 않으면서 실망만 하고 있는가? 3T 525.2
우리의 사업은 단순히 우리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의 선을 위해서 주님의 포도원에서 수고하는 것이다. 우리의 감화는 타인에게 축복 혹은 저주가 된다. 우리는 하늘을 위하여 완전한 성품을 형성하기 위해서 이 곳에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불평을 토하고, 우리 자신에 대해 쓰디 쓴 것을 기록하는 일을 벗어나서 해야 할 어떤 일을 갖고 있다. 우리의 대적은 우리가 쉬도록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자녀라면, 우리는 좌절과 역경을 당하게 될 것이며, 우리는 사단이나 사단의 감화력 아래 있는 이들이 우리를 잘 대접해 줄 것을 기대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충성되기만 하다면, 우리의 모든 고투 속에서 우리와 함께 할 뛰어난 능력의 천사들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시험의 광야에서 우리를 위해서 사단을 정복하셨다. 그분은 사단보다 강하시며, 잠시 후에 사단을 상하게 하사 우리의 발 밑에 두실 것이다. 3T 526.1
가족적으로, 또한 개인적으로 그대는 그대의 구주의 사업에 참여하여 열렬하고 활동적으로 섬기는 일을 하지 않았다. 그대는 지나치게 게으르고, 그대가 할 수 있고 마땅히 짊어져야 할 수많은 무거운 부담들을 타인이 짊어지도록 하였다. 그대의 영적 활력과 축복은 그대가 수행하는 선행과 사랑의 수고에 비례하게 될 것이다. 사도 바울은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갈 6:2) 고 명령하고 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우리에게 선행, 자아 부정, 자기희생, 타인의 유익을 위한 헌신을 요구한다. 우리의 선행만이 우리를 구원하지는 않지만, 선행 없이 우리는 분명히 구원받을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한 후에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의무를 했을뿐 기껏해야 무익한 종이요, 하나님의 지극히 작은 은총도 받을 자격이 없는 자” 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요 우리의 기쁨의 면류관이 되셔야 한다. 3T 526.2
자기 의와 육욕적인 안전이 마치 벽처럼 그대를 둘러싸 가두어 버렸다. 한 가족으로서 그대는 독립심과 교만한 정신을 품고 있다. 이러한 요소는 그대를 하나님께로부터 분리시킨다. 이것은 하나의 잘못, 곧 분별되어 정복당해야 할 결점이다. 그대가 스스로의 오류와 잘못을 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대는 스스로에 대해서 지나치게 좋게 생각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대의 생애의 실수들을 보고 고백을 통해 제거하는 것은 그대에게 힘든 일이다. 거의 모든 면에서 그것이 올바르든지 그릇되든지 간에 스스로의 행동에 대해서 그대는 정당화하고 옹호하는 경향이 있다. 잘못을 바로잡기에 너무 늦은 때가 오기 전에 그대의 마음을 겸비와 기도로 예수께 가까이 가져오고, 그대 자신을 알기 위하여 노력하라 그대가 깨어 일어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일하지 않는 한, 그대는 잃어버린바 될 수밖에 없다. 그대는 냉랭하고, 무감각하고, 동정심이 전혀 없는 갑옷 속에 갇혀 있다. 다른 이들과의 교제 속에 생기와 따뜻함이 거의 없다. 그대는 그리스도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대 자신을 위해서 살고 있다. 그대는 그대보다도 불운한 이들의 필요와 형편에 대해서 부주의하고 무관심하다. 그대 주변에 영적으로 갈한 이, 말과 행실 속에 표현되는 사랑을 갈망하는 이들이 있다. 친구로서의 동정과 다른 이들에 대한 부드러운 관심의 진정한 감정은 지금까지 결코 경험해 보지 못한 축복을 그대의 영혼에 안겨 줄 것이며, 선을 행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상에 강림하셨고 우리가 마땅히 그분의 생애를 복사해야 할 우리의 구속주와 더욱 밀접한 관계 속으로 들어가게 할 것이다. 그대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무엇을 행하고 있는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눅 13:24). 3T 52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