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물교훈
15장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한다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의 주위에 모였을 때에 랍비들은 불쾌감을 표시하며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고 말했다. COL 185.1
그들은 이렇게 비난함으로써 그리스도라는 사람은 죄가 많고 비천한 자들과 교제하기를 좋아하고 또 그들의 죄악에 대하여 무감각하다는 것을 암시하였다. 랍비들은 예수에 대하여 실망하였다. 그들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그처럼 고결한 품성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어찌하여 그들(랍비)과 섞이지도 아니하고 그들이 교훈하는 방법을 따르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외양을 꾸미지도 않고 돌아다니면서 각종 계급의 사람들을 상대로 일을 하고 있는가 하고 생각하였다. 참 선지자라면 그는 그들과 교우하고 세리와 죄인 들올 마땅히 냉정하게 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저희가 늘 그분과 논쟁하지만 그분의 순결한 생애가 그들을 두렵게 하고 저들의 양심으로 가책을 느끼게 하는 동시에 그분이 사회에서 버림받은 자들을 동정하는 것을 보았을 때 사회의 지도자임을 자처하는 랍비들은 성을 내게 되었다. 그들은 그분이 일하시는 방법을 찬성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들을 교양 있고 세련된 사람으로 생각했고 누구보다도 뛰어난 깊은 신앙을 가진 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모본은 그들의 이기심을 노출시켰다. COL 185.2
종내에는 랍비들을 무시하고 회당에는 한 번도 나오지 않던 자들이 예수의 주위에 모여들어 열심으로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보고 그들은 더욱 분노하였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순결하신 그분의 앞에서면 양심의 가책만을 느낄 뿐이었다. 그런데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께로 이끌려 가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COL 186.1
그들은 저희의 이러한 의문에 대한 설명이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한다는 저희의 조소적인 말 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예수께 나온 자들은 그분을 대할 때에 저희들에게도 죄의 구렁텅이에서 헤어나올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반면에 바리새인들은 그러한 자들을 비난하고 조롱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하나님 아버지의 집으로부터 떠나갔지만 결코 잊어버린바 되지 않은 하나님의 자녀로 대하셨다. 그뿐 아니라 저희의 불행과 죄가 오히려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동정의 대상이 되게 하였다. 그들이 아버지로부터 멀리 떠나 있으면 있을수록 그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열망은 더욱 간절했고 그분의 희생은 더욱 컸다. COL 186.2
이 모든 것을 이스라엘의 교사들은 저들만이 보존자요 해석자라고 자랑하는 두루마리 성경 가운데서 배울 수 있었다. 큰 죄에 빠진 다윗은 “잃은 양같이 내가 유리하오니 주의 종을 찾으소서”(시 119:176) 라고 기록하지 않았던가? 미가는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다음과 같은 말로 진술하였다.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그 기업의 남은 자의 허물을 넘기시며 인애를 기뻐하심으로 노를 항상 품지 아니하시나이다”(미 7:18). COL 186.3
이 때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청중들에게 성경의 말씀을 사용해서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그들의 경험을 실례로 들어 말씀하셨다. 요단 동편의 넓은 고원지대에는 풍부한 목초지가 있었다. 그리고 때때로 그 산골짜기와 나무가 무성한 숲 속에는 목자들이 찾아서 우리로 데려와야 할 잃어버린 양들이 많이 방황하고 있었다. 예수님의 주위에 둘러선 사람들 가운데는 목자들과 목장 주인들이 있었으므로 모든 사람이 다음과 같은 비유의 말씀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COL 186.4
예수께서는 너희가 멸시하는 이 사람들은 곧 하나님의 소유물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창조와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것이 되었고 하나님의 보시기에 귀한 것들이었다. 목자가 자기 양을 사랑하고 한 마리라도 잃어버리게 되면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그보다 더한 무한히 큰 사랑으로써 세상에서 버림받은 모든 영혼들을 사랑하신다. 사람은 비록 하나님의 사랑을 저버릴 수도 있고 그에게서 멀리 떠나갈 수도 있고 또 다른 주인을 택하여 섬길 수도 있다. 그럴지라도 그들은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것을 찾고자 열망하신다. 그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목자가 양 가운데 있는 날에 양이 흩어졌으면 그 떼를 찾는 것같이 내가 내 양을 찾아서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것들을 건져낼지라”(겔 34:12). COL 187.1
비유에 나타난 목자는 한 마리의 양, 곧 가장 적은 숫자의 양을 찾기 위하여 나아갔다. 그러므로 비록 잃어버린 영혼이 단 한 사람뿐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께서는 그 한 영혼을 위하여 죽으셨을 것이다. COL 187.2
우리에서 벗어난 양은 모든 양들 가운데서 가장 가련한 양이다. 이 양은 목자가 찾아오지 아니하면 혼자서는 돌아오는 길을 찾을 수 없다.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는 사람도 이러한 양과 같다. 그는 마치 길 잃은 양처럼 가련하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를 구하러 가지 아니하면 그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길을 결코 찾을 수 없다. COL 187.3
그의 양 가운데 한 마리가 행방불명이 된 것을 알게 된 목자는 평안히 우리 안에 들어 있는 양들을 바라보며 “아흔 아홉 마리가 남아 있는데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나가는 것은 너무나 많은 고생이 될 거야. 저 혼자 돌아오겠지, 돌아오면 내가 우리의 문을 열어 안으로 들여보내겠노라”고 말하지 않았다. 한 마리의 양이 길을 잃어버리자마자 목자의 마음은 슬픔과 근심으로 가득 찼다. 그는 양을 세어보고 또 세어 본다. 한 마리의 양이 길을 잃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는 우리 안에 있는 아흔아홉 마리를 버려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으러 나간다. 밤이 어두워질수록 비바람이 심해질수록 목자의 염려는 더욱 커져 더 열심히 찾는다. 그는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한다. COL 187.4
멀리서 들려오는 희미한 양의 울음소리를 처음으로 들었을 때에 그는 얼마나 안심이 되었는지! 그는 자기의 생명을 걸고 가파른 고개를 기어오르기도 하고 아슬아슬한 낭떠러지의 가장자리를 지나기도 하면서 소리 나는 그 곳으로 간다. 그가 그렇게 양을 찾아가는 동안 양의 울음소리가 점점 희미해가는 것을 듣고 그 양이 거의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침내 그렇게 노력한 보람이 있어 잃었던 양을 찾게 된다. 그 때 목자는 그 양이 자기에게 그처럼 많은 괴로움을 끼쳤다고 해서 그 양을 꾸짖지 않는다. 그는 양을 채찍으로 몰지도 아니하고 그는 양을 걷게 해서 집으로 끌고 오지도 아니한다. 그는 크게 기뻐하며 떨고 있는 양을 어깨에 멘다. 만일 그 양의 살이 찢어지거나 상처를 입었으면 그 양을 품에 꼭 안아 그의 품의 온기(溫氣)로 양에게 생명을 줄 것이다. 그러고는 수고가 헛되지 않았다는 흐뭇한 마음을 가지고 그 양을 우리로 메고 간다. COL 188.1
감사하게도 이 비유에는 목자가 양을 찾지 못하고 섭섭한 마음으로 돌아갔다는 말이 없다. 이 비유에는 실패했다는 말이 없고 오직 성공했다는 말과 그 양을 찾아 몹시 기뻐했다는 말만 있다. 이 비유 속에는 하나님의 우리에서 벗어난 양이 비록 한 마리일지라도 못 본 체하여 버려두거나 방임하지 않는다는 하나님의 보증이 있다. 누구든지 구속함을 받기 위하여 주께 마음을 바치는 자를 그리스도께서는 타락의 구렁텅이와 죄의 가시밭 속에서 건져내실 것이다. COL 188.2
낙심하는 자들아, 비록 그대가 아무리 악한 일을 했을지라도 용기를 잃지 말라. 혹시 하나님께서 내 죄를 사유하여 주시고 나를 당신의 앞에 나오도록 용납하실까 하는 생각을 갖지 말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먼저 나서셨다. 그대가 그분을 배반하고 있는 동안도 그분은 그대를 찾으러 나가셨다. 그분은 목자와 같은 측은한 마음을 가지고 아흔 아홉마리를 뒤에 남겨 두고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하여 들로 나가셨다. 그분은 당신의 사랑의 팔로, 터지고 상하여 거의 죽게 된 영혼을 안아 몹시 즐거워하며 안전한 우리로 가신다. COL 188.3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사랑이 죄인에게 베풀어지기 전에 먼저 회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가르쳤다. 그들의 관점에서 볼 때 회개는 사람이 하늘의 은총을 얻는 하나의 행위이다. 바리새인들이 놀라서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한다고 부르짖은 것도 이러한 관념에서 나온 것이다. 그들의 의견에 따른다면 그리스도께서는 회개한 사람 외에는 아무도 당신에게 가까이 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잃은 양의 비유를 통해 가르치고자 하시는 것은 구원은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감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심으로써 얻는 것이라는 점이다. “깨닫는 사람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없고 다 곁길로 나갔”(롬 3:11, 12)다고 하셨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가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회개하도록 하기 위하여 그가 당신의 사랑을 우리에게 나타내신다. COL 189.1
곁길로 나갔던 양을 집으로 데리고 왔을 때에 목자의 감사함은 기쁨에 넘친 아름다운 노래로 표현된다. 그는 자기의 친구와 이웃들을 불러 놓고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양의 크신 목자께서 곁길로 나가 방황하는 자들을 찾았을 때에는 하늘과 땅은 함께 기뻐하고 감사한다. COL 189.2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희 바리새인들은 하늘의 총애를 받은 자라고 생각하고 또 너희 자신의 의로써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만일 너희가 회개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나의 사명은 그대들에게 대한 것이 아님을 알라, 자신의 가난함과 사악함을 깨닫는 불쌍한 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내가 이 세상에 왔노라. 하늘의 천사들은 너희가 업신여기는 이러한 잃어버린바 된 사람들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너희들은 이들 중 어느 한 사람이 나와 연합하면 곧 불평하고 조롱한다. 그러나 천사들은 오히려 그것을 기뻐하고 개선(凱旋)의 노래로 하늘 조정을 울린다는 것을 알라. COL 189.3
랍비들은 하나님께 범죄한 자들이 멸망될 때에 하늘에는 기쁨이 있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하나님에게 있어서 멸망시키는 일은 “비상” (사 28:21)한 일이며 온 하늘이 기뻐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인간 속에 당신의 형상을 회복시키는 일이라고 가르치셨다. COL 190.1
죄중에서 방황하던 자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려고 할 때에는 비평과 의심을 받는 일이 흔히 있다. 저 사람이 과연 진정으로 회개한 것일까라고 의심하는 자들과 또는 “저 사람은 언제나 믿음이 견고하지 못하다. 그가 끝끝내 믿음을 지킬는지가 의심스럽다”고 속삭이는 자들이 있을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형제들을 참소하는 사단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악인들은 그들의 비평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을 낙담시키고 소망에서 끊어지게 하며, 하나님께로부터 더욱더 멀리 떠나가게 한다. 회개하는 죄인들로 하여금 잃어버렸던 영혼이 돌아올 때에는 하늘에 큰 기쁨이 있음을 생각하게 하라.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쉬게 하고 어떤 경우에든지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들의 조롱과 의심으로 낙심하지 않게 하라. COL 190.2
랍비들은 그리스도의 비유가 세리와 죄인들에게 해당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이 비유는 더욱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잃은 양은 한 사람의 죄인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배도하여 죄로 멸망하게 된 한 세계(世界)를 대표한다. 이 지구는 하나님이 주관 하시는 광대한 우주에 비해 지극히 작은 한 개의 원자(原子)에 불과하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이 타락한 작은 세계는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으로서 우리에서 벗어나지 아니한 아흔 아흡보다 더욱 귀중한 것이다. 하늘 조정에서 사랑받는 사령관이신 그리스도께서는 하나의 잃어버린 세계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가 아버지와 함께 가지고 계시던 그 영광을 버리시고 그 높은 자리에서 이 세상으로 내려오셨다. 그는 이 세상을 위하여 하늘에 있는 죄 없는 세계들, 즉 당신을 사랑하는 아흔 아홉을 뒤에 두시고 “우리의 허물을 인”(사 53:5)하여 “찔림을 받으시고”, “우리의 죄악을 인하여”, “상함을 받으”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통하여 당신을 주신 것은 잃어버린 양을 도로 찾는 기쁨을 얻으려 하심이었다. COL 190.3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요일 3:1). 또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요 17:18)나니 이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채우”(골 1:24)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께서 구원하신 모든 사람은 그분의 이름으로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기 위하여 일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이스라엘 나라에서는 이 일을 등한히 했다. 오늘날 소위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공언하는 자들도 이 일을 등한히 하고 있지는 않은지? COL 191.1
독자들이여, 그대들은 방황하는 자들 중에 몇 명이나 찾아서 우리로 돌아오게 했는가? 그대가 장래성도 없고 매력도 없어 보이는 자들에게서 돌아설 때에, 그리스도께서 찾고 계시는 영혼을 등한히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가? 그대가 그들에게서 돌아서는 바로 그 순간이 그들에게 그대의 동정과 도움이 가장 크게 요구되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예배 시간마다 거기에는 마음의 안정과 평안을 갈망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이 비록 부주의한 생활을 하는 것같이 보일지 모르나 저희는 성령의 감화에 무감각하지 않다. 그들 중에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게 될 수 있다. COL 191.2
만일 잃어버린 양을 우리로 이끌어 오지 않으면 그 양은 방황하다가 결국에는 죽게 된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구원의 손을 뻗쳐 주지 않기 때문에 멸망으로 들어가고 만다. 이 그릇된 길에 빠진 자들이 완고하고 분수없는 자같이 보일는지 모르나 만일 그들이 다른 사람들이 가진 것과 같은 특전(特典)을 가졌더라면 저희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심령의 고상함과 유용한 재능을 발휘했을지도 모른다. 천사들은 이러한 방황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긴다. 사람의 눈에는 눈물이 마르고 그들의 마음은 닫히어 동정의 여지가 없지만 천사들은 이러한 사람들을 보고 눈물을 흘린다. COL 191.3
아, 시험에 빠져 그릇된 길을 행하는 자들에 대한 깊고 심금을 울리는 동정심이 얼마나 부족한가! 아, 우리는 그리스도의 정신을 더욱 많이 가지고 자신에 대한 생각은 적게, 훨씬 적게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COL 192.1
바리새인들은 그리스도의 비유가 그들에 대한 책망임을 알았다. 그리스도께서는 바리새인들이 당신이 하시는 일에 대한 비평에 개의치 않으시고 그들이 세리와 죄인들을 등한히 여기는 것을 책망하셨다. 그분은 그들의 마음이 당신에게서 돌아서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들을 드러내 놓고 책망하시지는 않으셨다. 그러나 그의 비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요구하셨으나 그들이 이행하지 아니하는 바로 그 일을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만일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참된 목자였다면 그들은 목자로서의 직분을 다했을 것이다. 또한 그들은 그리스도의 자비와 사랑을 나타냈을 것이고 그리스도의 사업에 협력했을 것이다. 저희가 그렇게 하기를 거절함으로 경건하게 산다는 그들의 주장이 거짓됨을 드러냈다.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책망을 거절하였으나 어떤 사람에게는 그분의 말씀이 그들을 회개시켰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이러한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했으며 그들은 잃어버린 양의 비유에 요약된 바로 그 사업에 그분의 제자들과 협력하였다. COL 1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