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 7
교회증언 7
교회증언 7권의 배경
교회증언 7권은 6권 출간 후 불과 2년이 경과한 1902년에 출판되었다. 그러나 그 몇 개월간에 획기적인 발전이, 특별히 우리 교단 사업의 재조직으로 이루어졌다. 7T 3.1
약 38년 전인 1863년에 미국 안에 있는 모두 여섯 개의 지방 합회로 대총회가 조직되었다. 그 당시에는 30명의 안수 목사와 인준 목사들이 3,500명의 교인들과 125개의 교회에서 봉사하고 있었다.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의 학교와 위생병원 등은 없었고, 단 하나의 교단 출판소만이 있었다. 7T 3.2
매 10년마다 교인 수와 채용된 일꾼들이 배가되고, 새로운 활동 분야들이 시작되는 것으로 특징이 지어졌다. 세기가 바뀌자 사업은 세계적인 범위로 자라났다. 1900년의 통계 보고에 의하면 13개 출판소와 분소들을 통하여 39개의 언어로 출판물이 출간되고 있었고, 500명의 안수 목사들이 교단 사업의 여러 분야에 있는 1,000명의 다른 교역자들과 함께 1,892개 교회에 속한 66,000명의 신자들을 돌보고 있었다. 이것들은 45개의 지방 합회와 42개의 지방 대회로 이루어져 있었다. 호주와 유럽에서도 지방 합회들이 연합회 조직으로 결합되었다. 7T 3.3
출판 사업의 발전과 함께, 의료와 교육 사업, 그리고 안식일학교 사업의 시작과 더불어, 자발적인 조직체들이 이 사업 분야들을 돌보기 위해 형성되었다. 그것들은 여러 출판 협회와 교육 협회들 외에, 국제 안식일학교, 의료 선교, 그리고 종교 자유 협회 등이었다. 외방 선교 사업은 외방 선교국에 의하여 관장되었다. 비록 이 여러 기관들의 사업이 상호 간에 관련을 가지고 있었을지라도, 미국 내에 널리 흩어져 있는 본부 사무실을 가지고 별개의 독특한 조직체로 각각 봉사했다. 외방 선교국 사무실을 위해서는, 큰 해운 (海運) 중심지라는 장점 때문에 뉴욕 시가 선정되었다. 안식일학교 협회의 경우는,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가 그 임원들에게 편리한 중심지가 되었다. 종교 자유 사업은 일리노이 주 시카고에, 의료 사업은 미시간 주 배틀크릭에 본부를 두었다. 7T 3.4
정상적인 성장을 하고 있는 교단이 1863년의 최초의 시설보다 더 커졌다는 것을 깨닫기란 어렵지 않다. 어떤 변화가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대총회 행정 위원은 12명으로 구성되었는데, 그 중 4명은 배틀크릭 주민들이었다. 어떻게 이 소수의 사람들이 지금 세계적인 범위로 급성장하고 있는 사업을 돌볼 수 있겠는가? 호주와 유럽 연합회들 외에는 온 세계의 합회들과 대회들이 대총회로부터 직접 지도를 받도록 지시되었다. 어떤 분야의 필요가 소홀해졌고, 어떤 경우에는 관리 능률이 부족했다는 것은 별로 이상하지 않다. 사업의 어떤 분야들은 불균형하게 성장하여 자생적인 독립적 조직 분야들 내에서 선두 주자로 나서게 되자 외관상 정규적인 범위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혼란들이 많아졌다. 7T 4.1
이것이 엘렌G.화잇이 호주에서 미국으로 최근에 돌아와 대총회 회기의 개회식에서 이야기한 당시, 1901년 4월의 상황이었다. 그는 사업의 철저한 재조직을 요구했고, 특별히 책임 분담의 필요를 강조했다. 필요는 분명히 밝혀졌지만 그 상황과 어떻게 싸우느냐 하는 것이 난처한 문제가 되었다. 마침내 실천을 위한 호소에 의하여, 지도적인 비전과 믿음의 사람들로, 대총회의 사업은 재조직되었다. 첫째, 호주에서 시작되어 유럽에서 따르게 된 연합회의 계획이 채택되었다. 이것은 지역적으로 돌볼 수 있고 또한 그렇게 해야 할 많은 세부적인 것들을 대총회의 행정이 간여하지 않게 했다. 둘째, 출판, 의료, 안식일학교, 교육 사업과 같은 여러 가지 자치적인 교단 조직체들을 대총회의 부서로 예속시키기 위한 기초가 놓여졌다. 셋째, 대총회 행정 위원을 크게 증원시켜 온 세계의 지역과 사업의 모든 분야들의 대표자가 되게 했다. 7T 4.2
대총회 사업의 어떤 분야들은 다소 빨리 재조직되었다. 안식일학교, 교육, 종교자유부는 즉시 존재하게 되었다. 다른 분야들은 시간이 걸렸고, 어떤 경우에는 재난을 당하고서야 비로소 변화에 대한 필요를 깨닫게 되었다. 의료 사업에 있어서는 재조직의 과정에서 그 사업과 관련된 남녀들이 생각하고 그들이 임하고 있는 그 큰 사업에 대한 철학을 바꿀 필요가 있었다. 1901년의 대총회 회기 당시에 배틀크릭 위생병원은 그 위성 기관들과 함께 절정에 이르러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의 사업의 큰 부분을 이룬 것처럼 보였다. 그 지도자들이 성격에 있어서 전혀 비교단적인 하나의 큰 그리스도교 의료 선교 사업을 계획하기 시작한 것이 분명해졌고, 그것은 미구에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의 교단을 어둡게 할 것이었다. 7T 5.1
그런데 1902년 2월 18일에 첫 재난이 닥쳤다. 배틀크릭 위생병원의 본관이 화재로 쓰러졌다. 건물의 재건을 위한 준비가 곧 이루어지자, 그 후 불과 수 개월 내에 교역자들의 손에 들어간 예언의 신의 권면과 함께 화재의 경험은 많은 사람들에게 교단 사업 중 특별하고 요긴한 부분으로서의 의료 사업의 참된 위치를 더욱 분명히 깨닫게 했다. 규모에 있어서 너무 크거나 야망적이 아닌 많은 의료 선교 중심부를 세워서 확산시켜야 한다는 호소가 있었다. 7T 5.2
그것이 우리의 위생병원 사업에 관한 부분을 이루는 화잇의 기사들이 집필된 배경이다. 그 기사들을 7권에 포함시켜 계속해서 교단에 도움이 되게 했다. 7T 6.1
초기에 리뷰 앤드 헤랄드와 퍼시픽 출판사가 설립되었을 때, 적당한 가격으로 필요한 형태의 출판물을 생산하기 위하여 잘 갖추어진 공장의 설비가 필요했다. 그러나 초창기에는 엄격히 교단의 사업만으로는 그런 설비를 완전히 가동시킬 수가 없었다. 기계를 계속해서 작동시키고 잘 훈련된 인쇄소 직원을 확보하기 위하여 우리의 출판 기관들은 상업적인 인쇄를 요청했다. 그 사업은 낱장 종이와 사무 용지의 인쇄로부터 단행본들의 출간에 이르기까지 줄을 섰다. 이것은 꽤 수지가 맞는 일이 되었고 공장과 직원들을 건전한 기초 위에 서도록 도왔다. 7T 6.2
그러나 많은 문제들이 이 상업적인 인쇄를 통하여 야기되었다. 품성을 고상하게 하지 못하는 책들을 위한 원고들이 제출되었고, 수락되었다. 이런 출판물들 중 어떤 것들에는 심각한 교리적인 오류들이 들어 있었고, 그 중 어떤 것들에는 다른 이유에서 결정적으로 유해한 것이었다. 이런 상태가 교회증언 7권의 시대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출판 지도자들은 이 사업의 위험을 지적하고 개혁을 요구하는 예언의 신의 기별들을 받았다. 그 후에 또한 여러 해에 걸쳐, 교단의 사업이 계속해서 발전됨에 따라 그 시설과 직원들이 순전히 교단의 사업만을 위해 필요될 때까지 시간에 묶여버렸다. 그러나 리뷰 앤드 헤랄드와 퍼시픽 출판사가 계속해서 화재로 파괴되고서야 그 기별들은 완전한 결실을 거두었다. 새로 신축된 출판사들에서 사업의 계획들이 세워져 실천되려고 할 때, 지도자들은 믿음으로 앞으로 나와서 새 건물들과 장비를 순전히 교단의 출판물을 인쇄하는 데만 바치기로 봉헌했다. 그들은 교회증언 7권의 빛에 의해 그렇게 했는데, 그것은 온 세계의 출판 사업에 본이 되는 영향력을 가진 것이었다. 7T 6.3
화잇 부인이 1901년에 대총회의 회기에 참석하기 위해 캘리포니아 주 세인트 헬레나에서 미시간 주 배틀크릭으로 여행할 때 그는 남부의 길을 택하여 새롭게 세워진 출판사를 살펴보기 위해 내쉬빌에 들렀고 다른 장소에 있는 새 학교들 중 몇을 방문하였다. 이 사업들은, 남부에서 광범위한 사업이 시작되는 것에 대하여 리뷰 앤드 헤랄드 지의 칼럼에서 그가 호소한 내용을 통하여 크게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의 권면들은 비록 집필 당시에는 그가 호주에 있었지만, 그 사업을 육성시킨 자들을 고무하고 지도했다. 그는 이제 그 중심부들을 방문하고 그 자신의 눈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직접 목격하는 특권을 가졌다. 7T 7.1
이 지역과 그 필요를 직접 보고 그에게 주어진 계시들을 보충하고, 또한 그 사업에 대한 새로운 견해를 가지고 그는 정규적으로 고용된 많은 수의 사람들과 평신도로 하여금 남부의 주들로 들어가서 기별을 확산시킬 기회들을 이용하고 백인들과 유색인들 사이에서 다같이 사업을 추진하는 데 따르는 문제들과 싸우도록 호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2년 동안에 기록된 고무적인 호소들이 7권의 주요한 부분을 이룬다. 이것들은 적지 않은 가정들이 남부 지방으로 이사하여 조용하고 경건한 생애와 적극적인 전도를 통하여 기별을 전하도록 이끈 수단이 되었다. 이 파종의 풍성한 수확을 오늘날 보고 있다. 7T 7.2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이 그들의 초기의 경험에서 생활을 통하여 개혁들을 배우고 실천할 때 건강 식품들의 발전과 제조에 지도적 역할을 하게 되어 어떤 것들은 해로운 종류의 식품을 대신하게 되고, 어떤 것들은 식욕을 돋우는 적절하고 균형잡힌 식생활을 제공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비록 그 제조 사업이 대부분 우리의 손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훗날에 발전되어 큰 시리얼 식품 사업의 기초가 놓인 것은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의 노력과 가르침 때문이었다. 아직도 7권의 시대에 우리는 꽤 많은 우리 자신의 건강 식품 제조 센터들을 운영하고 있었으며, 어떤 도시에서는 건강 식당도 운영되고 있었다. 7권의 여러 장 (章) 들이 이 사업에 관하여 권면을 하고 있으며, 그것이 이 백성이 세상에 전하고 있는 독특한 기별에 유효한 감화를 남길 수 있는 그런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7T 7.3
7권의 시대 동안의 기별들은 또한 도시 사업의 추진에 대한 호소로 특징지어진다. 비록 이것들이 그 후 여러 해만에 나타난 강력한 다른 호소들에 의하여 뒤따르기는 하지만 우리의 대도시 사업의 필요는 이 책의 첫 부분에 일반적인 방법으로 우리 백성들 앞에 처음으로 제시되었다. 이루어져야 할 사업은 합회 교역자들에게 국한되지 않았다. 여러 계층에서 온 평신도들이 큰 인구의 중심지에서 변함없이 확장되어가는 사업에 투신해야 할 것이었다. 여러 해 동안에 계속되어야 할 큰 전도 계획이 시작되었다. 7T 8.1
7권이 출판되었을 때,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은 반 세기 이상 적극적인 사업에 종사해 왔다. 여러 해에 걸친 기별은 갑옷을 벗고 그들의 짐을 내려놓아야 할 교역자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업을 세우기 위하여 희생과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이 사업에서 떠나고 젊은 손들이 그 짐을 져야 할 때가 되었지만 그들을 부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긴박한 사태와 구제책이 화잇 부인에게 분명히 계시되었다. 그래서 그는 7권의 마지막 기별에서 부드러운 말로 연로한 교역자들에 대한 교회의 책임을 밝히고 있다. 이와 같이 은퇴한 교역자들의 필요를 돌보기 위한 자금을 호소한 그의 결실이 이 책 출간 몇 년 후에 생겨난 부양료 제도로 오늘날 알려져 있다. 7T 8.2
7권은 몇 가지 분야에 국한된 교훈이 주어져 있지만 그 주요한 권면들은 멀리까지 미치고 풍부한 결실을 이루었다. 7T 8.3
엘렌G.화잇 출판 관리 위원회